더불어 생각하며 / 김 성 기

합덕대건신협 이사장, 합덕평생교육원장

인간은 왜 불행한가

원래 이 세상은 ‘참으로 좋은 세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조화 속에 행복하도록 신의 모습대로 창조된 신의 최고 걸작품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지식으로 인해 자신을 과시하고 신이 창조한 ‘참으로 좋은 세상’을 ‘참으로 나쁜 세상’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인간이 지식이라는 왜곡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은 신의 더할 수 없는 조화로운 세상 그 자체가 부족하고 부조화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고 완전하신 신이 부족하고 불완전하게 인간을 창조했다고 오만한 불평과 불안을 가지게 된 것도 지식의 무지와 오만에서 온 결과이다.

지식은 분리를 가져온다. 신과 인간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즉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승리와 패배... 그리고 가장 큰 비극은 대자연(신)과 인간의 분리이다. 그것은 곧 ‘반드시 죽게’(창세기 2. 17)됐음을 뜻한다.

짐승이나 새들, 길짐승이나 곤충들은 결코 대자연과 자신을 분리시킨 적이 없다. 그래서 자기를 의식하는 일도 없이 오직 대자연의 일부로서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서만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사람은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ego)을 인식하면서부터 대자연과 자신을 분리해 놓고는 신이 창조한 세상이 못마땅해서 스스로가 원하는 다른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신보다 위대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인간의 오만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미 성경에서도 인간의 교만이 ‘바벨탑’을 쌓은 이야기가 나온다(창세기 11장). 현대문명은 바벨탑의 대명사이다. 특히 신학자들은 한술 더하여 신까지도 규명하고 설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신학논쟁을 2000년 동안이나 일삼고 있다.

앎이 시작된 후 인간은 이제 대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그래서 인지(人知)를 짜내어 과학을 연구하여 자연과의 투쟁을 일삼고 있다. 대자연과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인간은 이제 돌아갈 고향(대자연)마저 상실한 미아가 되고 말았다.

신(대자연)을 적대시하고 어찌 대자연 속에 안주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인간은 신이 주신 엄청난 능력(元力)까지도 도외시하고 아주 미약하고 불완전한 스스로의 힘(지식)으로만 살아가야 할 빈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21세기는 문명에서 생명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뜻과 섭리에 순응하고 자신들의 얄팍한 지식에 의존하는 빈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재물이 부족하고 경제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내뜻, 내욕심껏 바라고 원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살펴야 하겠다. 우리나라의 큰기업주들의 모습, 권력과 금력들의 시한부적 허무성들을 보면서 인간의 참행복은 대자연안에 순응함 밖에서는 절대로 찾아지지 않음을 자각할 때다. 내 가슴안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솟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