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건오

당진축협 기획실장

공주대학교 강사

우리 사회에는 비판문화가 없다. 서로 봐주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그 집단의 성원을 비판한다는 것은 따돌림당하기 십상이고 필경에는 온전히 자기 위치를 보전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며, 만일 실명으로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고 비판을 가할 작정이라면 어느 경우에는 사회적인 죽음까지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긴 세월 동안 우리의 문화로 자리잡아온 혈연으로 대별되는 씨족의 테두리와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있는 사회구조로 인한 것이다.

비판의 본래 목적은 활발한 의견 교환을 통해서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 양자간에 발전적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사회가 보다 바람직하고 적극적이며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다면 비판은 불필요한 갈등과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다.

비판을 제기한 사람의 의견이 충분히 설득력 있음에도 그 비판을 묵살하며 상대를 무시하거나, 물리적인 위해나 위협을 동원해서 공포심을 주거나, 무조건 강도 높은 비판으로만 대항하여 제압하고자 함은 건전한 민주사회로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비판을 통한 대화와 토론은 민주사회의 꽃이다. 사회는 정당한 비판과 그 비판의 수용을 통해서 개선되어지는 것이므로 건전한 비판이 자신의 의지와 조직의 이익에 반한다 하여 비난을 하는 사회적 구조는 마땅히 고쳐져야만 할 것이고 우리들 스스로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 모두가 비판의 필요성과 비판의 본래 목적을 망각한다면 비판은 항상 갈등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전한 비판 문화의 형성을 위해서는 비판하는자와 비판받는 자 모두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갈등 해결의 방법이기도 하다.

TV에서 논어 강의를 하던 도올 김용옥이 김수환 추기경과의 초청대화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자신의 어려움과 처신에 대해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자신 만만하고 자화자찬을 하면서 독설까지 섞어 다른이에게 비판을 가하는 그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화살 같은 비판에 대해서 부담을 가지는 것을 보면 비판은 누구나에게 두렵고 피하고 싶은 항목인가 보다. 이때 추기경께서는 대답으로 이순(耳順)을 지나면 잘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셨다. 이때의 이순(耳順)의 의미는 비판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지를 언급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우리사회는 각종 단체의 인터넷 싸이트에 올라오는 비판의 글들로 인해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감추어지거나 별로 문제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항들도 공개되면 토론의 재료로 전환되기 때문에 대상이 된 사람들은 매우 감정적이며 심한 경우에는 논리적인 설득을 떠나서 원색적인 비난으로 대처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사회는 비판을 통한 개선은 커녕 갈등만 증폭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모두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건전한 비판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또한 우리사회가 도덕적 결함의 개선이나 부패를 막고 건전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간에 두려움 없는 비판이 수용되어야 하고 각 조직의 내부에서도 부담없는 비판과 토론은 물론 자기 스스로의 비판도 따라야 한다. 조직이 내부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운영해간다면 그 비판은 밖으로 튀어 나갈 것이다. 내부에서 가리고 감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떳떳하게 공개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물을 포장해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수는 있다. 그러나 그 냄새까지 향긋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