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대시론

권건오 / 당진축협 기획실장, 국립공주문화대학 강사

한국에는 협동조합이 존재하는가

한국 협동조합의 역사는 일제치하에서 농민을 효율적으로 관리, 지배, 수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한 것이 그 시초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개념은 건국 초 시작의 단계에서부터 자율성보다는 그 당시 국민전체의 90%에 해당하는 농촌사회를 장악하기 용이하고, 수구 기득권 세력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선택이 되어 일제의 잔재 청산이나 협동조합의 근본적인 취지를 살리지 못하였다. 이 과정을 거쳐 수십년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구성원 또한 타성에 젖어버려 올바른 협동조합이 어떠한 형태인가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편의 위주의 업무 집행을 하면서 구성원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이념과 사상을 잊어버린 체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에 통제되고 있다. 외관상은 협동조합이나 경영상은 정부의 공기업 형태로 전락되었다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의 강제농정, 전시농정, 농민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하향적으로 만든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자주적 협동운동이 방해를 받고 자율적 활동이 제약되었으며 하향식 조직과 권력의 간섭은 협동조합의 인사운영이 관료화되고 보수적으로 바뀌는 원인이 되었다. 항상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개혁이 논의되었으나 추진 방식이 관 주도였고 그 개혁 내용 또한 미봉적이었다.

협동조합의 개혁논리는 지엽적인 문제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제도를 바꾸는 것을 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개혁은 실패한 것이다. 구성원의 의지가 진보적이어야 하고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구성원에 대한 교육으로 이념적 무장이 확고하여야 한다. 개인적인 이익과 집단의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다면 이 모든 사태는 더욱 불행해 질 것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구농협, 구축협 중앙회 노조간의 성명을 통하여 본다면 통합의 의미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가고 있는 듯하다. 결국은 부실의 합병으로 더 큰 부실을 만들어 나간 꼴이나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근본적으로 거쳐야 할 조합원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결정하지 못한 것과 아래서부터의 개혁이 아니기 때문에 돌출하는 상황은 아닐까?

일단 협동조합의 통합은 정부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고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억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방법으로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의 협동조합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가?

협동조합의 다양성과 연대성을 반영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의 판결은 농축협 통합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협동조합이 제기능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협동조합이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정부는 협동조합이 자주, 자조적인 조직이라는 본질을 무시하고 자율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며 민주적인 운영을 제한하는 빌미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들이 앞으로의 협동조합에서도 통제가 된다면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는 협동조합의 존재가 없는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협동조합 연구기관인 풀런켓 재단의 에드가 파넬 소장이 “협동조합이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된다면 더 이상 협동조합이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통제하는 협동조합은 이미 협동조합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가 협동조합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협동조합 관여가 정당하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정부는 협동조합의 수적인 통제를 할 것이 아니라 단위 협동조합이 건실하게 운영되고 성장될 수 있도록 자율적 운영에 협력하고 평가를 통한 지원으로 바람직한 협동조합으로 육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