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40대 남성이 연인이었던 여성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여성은 몸 곳곳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범인을 저지른 남성은 이후 낚시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데이트폭력’, ‘스토킹’ 우리와 멀지 않은 이야기다. 지난 2021년 당진경찰서로 신고된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가 54건이었던 가운데, 지난해는 10월 말 기준으로 207건이 접수됐다. 1년 사이 4배가 늘어난 것이다.
신고 이전 상담을 위해 당진시폭력예방상담소의 문을 두드린 사람 역시 늘고 있다. 가정·성·디지털·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스토킹을 아우르는 젠더폭력과 관련한 상담 건이 지난 2021년 2276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까지만 집계해도 2021년을 넘는 2854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가정폭력과 성폭력 상담의 비중이 높았다.
한편 눈에 띄게 디지털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 스토킹에 대한 상담도 늘어났다.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2021년 21건의 상담에 불과했으나 2022년 168건이 접수됐다. 데이트 폭력 역시 29건에서 138건으로 늘었으며 스토킹도 25건에서 59건으로 증가했다. 증감율로 보면 데이트폭력 관련 상담이 2021년에 비해 2022년 533% 늘어 당진도 데이트폭력에 안전하지 못한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젠더폭력이란, 데이트폭력과 스토킹 등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신체적·정신적 안녕과 안전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젠더폭력에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이 포함돼 있다.

젠더 폭력이 증가되는 가운데, 당진시의회(의장 김덕주)가 젠더폭력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지난달 27일 당진여성의전당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 사회는 최연숙 시의원이 맡았으며 김영주 충남여성가족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주요 젠더폭력 이슈와 향후 대응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 △이미화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영옥 여울종합상담센터장 △김진숙 당진여성연대 대표 △이준기 당진시 여성가족과 여성정책팀장 △지나영 당진신문 기자 △한수미 당진시대 기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최연숙 시의원은 “우리의 일상에는 젠더폭력이 만연하지만 수면 위로 오르지 않았다”며 “젠더폭력 대응을 위해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젠더폭력에서 지워진 여성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젠더폭력 현황에 대한 통계가 미흡하다”며 “통계가 마련돼야 하며 이에 따른 심도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 내용>
△ 이영주 수석연구위원
‘주요 젠더폭력 이슈와 향후 대응과제’
“최근 가정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의 양상이 점점 흉포화되는 경향이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젠더폭력을 적극적으로 방지하고 피해자의 보호와 온전한 일상회복을 위한 법적, 정책적 대응이 강화돼야 한다. 가정폭력과 스토킹, 데이트 폭력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고 현실에서는 중첩적인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개별 법령에서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젠더폭력은 피해가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혹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일상의 안전과 안녕이 파괴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에 비해 현재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가해자의 폭력행위를 통제하기에 미흡한 수준이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반복적인 피해 방지를 위한 사회적 감시망을 강화해야 하며, 국가뿐 아니라 지자체에게도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해 당진시는 젠더폭력 관련 조례 제·개정과 젠더폭력 방지를 위한 지역활동가 양성, 안전 모니터링, 폭력 예방사업 등 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확대해야 한다.”
△ 이미화 교수
‘주요 젠더폭력 관련 토론’
“N번방 사건만 보더라도 이제는 여성을 대상으로 통신매체를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경찰 범죄통계에서도 다른 젠더폭력 유형의 범죄는 줄어들지만 디지털 성범죄 발생과 피해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듯, 데이트폭력 유형에서도 정서적 폭력이 신체적, 경제적 폭력보다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게 발생하고 있다. 당진시는 주요 젠더 폭력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고 예방적 측면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 측면도 고려한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앞으로 현실적인 예방 교육이나 피해자 치료, 그리고 협력기관 및 지역 경찰과의 연계로 젠더폭력 문제를 잘 풀어가야 한다.”
△ 박영옥 센터장
‘청소년 성 문화와 젠더’
“청소년 사이에서도 젠더와 관련한 문제가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음란물을 접하기 시작한다. 잘못된 성문화로 인해 젠더 문제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미 스스로 젠더폭력을 행하는 사례가 많다. 부모 역시 젠더폭력과 잘못된 성문화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할지 모른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젠더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부모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피해받은 아이들이 목소리를 내도 아이들 안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피해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어루만져주고,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 김진숙 대표
‘젠더폭력의 이해와 대응’
“젠더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구조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인식과 범행에 무기력한 제도의 구멍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젠더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가리고,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젠더폭력은 성평등을 위한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과 정부와 지자체가 관련 통계 집계, 연구, 예방책 마련 등을 해야 할 문제다. 젠더폭력이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점, 즉 차별에서 비롯되며 다시 차별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이 젠더폭력 예방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 이준기 팀장
‘젠더폭력의 현실과 대응 과제’
“3년 차를 맞이하는 당진시폭력예방상담소가 내년이면 젠더폭력에 대한 실태조사까지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진시에 아동여성 안전과 관련한 조례가 있지만 운영 부분에 대한 내용이 명시돼 있어 실효적인 부분에는 약하다. 조례 제정을 서두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올해 가정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역활동가를 양성했다. 앞으로 당진시민을 대상으로 더 많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성친화도시TF팀 존폐를 두고 이야기가 많다. TF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당찬여친 시민참여단이 가정폭력시민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마련해 나가겠다.”
△ 한수미 기자
‘당진시의 젠더폭력 대응 방안’
“당진지역에도 젠더 폭력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닌, 본인이 될 수도 있고 또 주변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젠더폭력 용어에 대한 인식이 낮다. 단순히 성과 관련해 신체적인 폭력에 그치는 것이라고 아는 이들이 많다. 젠더폭력의 용어 의미와 양상에 대해 시민들에게 계속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당진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을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여성계가 공동 대응을 해서라도 공론화를 하고, 함께 나서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더불어 사각지대에 처한 여성을 대상으로 젠더폭력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여성 직군 중 가스검침과 수도검침, 요양보호사, 가정학습 등 가정 방문을 주로 하는 경우에 젠더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실태 조사와 대안 마련을 요구한다. 끝으로 청소년 교육을 강조하고 싶다. 교실 안에서도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 혐오는 폭력을 만들고, 폭력은 결국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혐오가 생산되지 않도록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 지나영 기자
‘디지털 성범죄와 언론의 역할’
“당진시폭력예방상담소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성폭력 관련 상담 요청자는 2021년 7명이었던 반면 2022년 10월 기준 12명으로 약 1.7배 늘었다. 상담이 늘어나는 이유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SNS를 이용한 비접촉 성범죄로 변화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게다가 아동과 청소년을 표적으로 온라인 그루밍 등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뀐 성교육으로 청소년이 올바른 성 지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발생한 성범죄를 숨기는 것이 아닌 공론화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데 함께 해야 한다. 언론은 사건의 집중적 보도를 통해 대중이 사건의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심층적 분석 보도를 진행해야 한다. 단순히 ‘카더라’가 아닌, 경찰의 언론보도 외에 숨겨진 피해자의 목소리를 찾아내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