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2 · 문화·교육 · 박경미
“계속 읽고 싶은 ‘애착 동화책’ 쓰고 싶어요”최하진 일러스트레이터 (父 故 최원기·母 유상옥)
…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처는 예술로 풀어내고 프랑스 유학 생활은 그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성장시키게 했다. 입학한 학교에는 외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 프랑스인만 만나다보니 일주일간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기도 했다. 친구들 간 교우관계는 좋았지만 그…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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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건 · '그를 기억' · 문화·교육 · 최근 기사부터2 / 4쪽
2019.07.12 · 문화·교육 · 박경미
…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처는 예술로 풀어내고 프랑스 유학 생활은 그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성장시키게 했다. 입학한 학교에는 외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 프랑스인만 만나다보니 일주일간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기도 했다. 친구들 간 교우관계는 좋았지만 그…
2018.12.01 · 문화·교육 · 박경미
…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시련에도 끈기로 모래판을 지켰고 끈기는 결국 그를 천하장사로 만들었다. 늦게 시작한 운동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태어난 박정석 씨는 또래 학생들 보다 늦게 씨름에 입문했다. 체격이 크고 좋은 박 씨가 조금초등학교에 다닐 당시에도…

2017.11.04 · 문화·교육 · 한수미
…음 먹은 뒤 무작정 시를 찾아다녔다. 어느 순간 시는 그에게 다가갔고, 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인 황영애는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정작 그는 ‘한 달만 쉬어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글쓰기 경북 안동…
2017.09.04 · 문화·교육 · 김예나
…났다. 애써 외면한 채 평범한 척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여전히 몸서리친다. 게다가 자신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은 놈들은 얼마 되지 않는 죄값을 치르고는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고등학생 1학년이었던 지난 2014년 A는 타 학교 …
2017.08.21 · 문화·교육 · 한수미
… 선생님에게 “야구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곧바로 야구부 감독이 그를 찾아왔고, 그때부터 야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기에 형편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버지(故 이종서)와 어머니(김종은)는 일을 하기 위해 경기도로 떠났고…
2017.02.05 · 문화·교육 · 이영민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유난이 씨는 한 번 노래를 들으면 가사와 음정을 기억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게다가 음색이 고와 듣는 이들마다 칭찬이 자자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아침 조회시간 마다 대표로 나서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고 교가를 불렀다…
2016.10.29 · 문화·교육 · 이영민
…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박 청장이 용산중학교로 진학하기 전 당진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로 가득하다. 성실하게 가정을 책임졌던 모습과 강한 교육열을 토대로 5남매를 전부 길러 낸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아직까지 그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고향 가는…
2016.08.20 · 문화·교육 · 이영민
…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어린 시절 억울하게 ‘자전거 도둑’으로 몰렸던 기억 때문이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던 그는 자전거를 너무 갖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하천변에 버려진 자전거를 발견하고, 자전…
2016.07.23 · 문화·교육 · 이영민
…적 살았던 송악읍 영천리의 풍경과, 부모님을 따라 농사일을 도왔던 고된 기억들은 이제는 추억이 됐다. 수사기록이나 인사기록을 살피다가도 ‘당진’ 이라는 글자를 발견하면 넘겼던 서류를 다시 되돌려보곤 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법무법인 세…
2016.02.05 · 문화·교육 · 한수미
…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졸업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대손손 자녀들이 그를 따라 당진초를 입학하고 졸업하고, 또 입학하며 가족 모두 당진초 출신이다. 여기에 예은이의 할아버지인 최경용 씨는 48회 졸업생으로 제6대 당진초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2015.10.30 · 문화·교육 · 임아연
…하는 시위를 하다 강경진압에 숨진 연세대학생 노수석 열사의 추도식 때도 그를 기리며 걸개그림을 그렸다. 오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청년미술운동에 뛰어들어 오랫동안 학생운동을 했다. 미술을 전공한 그에게 예술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2014.10.30 · 문화·교육 · 한수미
…만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보이며 마음으로 다가갔고 그 모습을 본 아이들도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가 기억하는 학생 중 한 명은 교사와의 갈등으로 자퇴까지 마음 먹고 학업을 포기하려 했다. 그때 이 교사는 학생에게 “교사를 이겨보라”며 “열심히 공부해서…
2014.10.1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않다. 어릴 적 위인전을 많이 읽었지만, 나의 심장을 뛰게 한 위인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감동적인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래도 나의 인생행로를 바꿀 정도로 감동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지난 8일…
2014.07.09 · 문화·교육 · 박초롱
…하는 전 씨지만 처음에는 뻣뻣함 그 자체였다. 단원들은그때의 전 단원을 기억하며 “참 뻣뻣했다”며 입을 모았다. 다리찢기조차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연습을 당할 수 있는 건 없다. 결국 지금은 팀에서 유연성 담당으로 자리매김했다. “타…
2014.02.08 · 문화·교육 · 임아연
…덧 36년이 흘렀다. 수업료 몽땅 털어 음반 구입 LP에 대한 그의 첫 기억은 중학생 때다. 대성목욕탕집 아들이던 그가 어깨 너머로 들은 팝송을 들리는 대로 한글로 옮겨 적어 부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팝송을 부르다 보니 영어를 잘하게 됐는데, 다른 과…
2013.10.24 · 문화·교육 · 김창연
“꽃과 나무로 가득했던 고향집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님께서 신평면 거산리에서 꽃집을 운영하셨기에 집은 항상 식물들로 가득했죠. 부모님께서 당진으로 이사 와서도 제일화원을 운영하셔서 유년시절은 항상 꽃과 함께였습니다.” (주)삼표 그룹의…
2013.03.22 · 문화·교육 · 당진시대
…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녹색이 짙어지는 3월, 다시 김유순 씨를 만났다.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김 씨가 아들(고 이석주 사진작가)의 병간호 차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들 생각에 살아가는 김유순 씨. 김 씨는 햇…
2013.02.15 · 문화·교육 · 김창연
…어도 가이드로서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움에 대한 욕심은 그를 더 움직이고 노력하게 만들었다. 졸업을 앞둔 학교생활과 논문, 여행사 운영을 병행하며 자격증 취득은 쉽지 않았지만 김재두 씨는 결국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블루뱃지를 취득하는…
2012.07.06 · 문화·교육 · 박기욱
…힘들다고 떼를 쓰자 하루는 엄마의 부탁으로 윗집 선배가 자전거를 태워준 기억이 나네요.” 반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도시로 진학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대신 집안을 이끌던 …
2012.05.21 · 문화·교육 · 우현선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스타 뒤에는 그를 위해 땀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단 연예인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력자들은 각 분야마다 있는데,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가 제 음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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