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음악은 살아 있다. 모든 소리는 평면적인 높낮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LP(Long-Playing Record)로 듣는 음악은 마치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들이 내 품으로 뛰어드는 것 같았다.
‘치익 치지직’
LP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잡음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겐 향수를 일으키는 소리이고 디지털 세대에겐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 LP는 흔치 않은 골동품 같은 것이고 낡은 것이고 촌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가 들려준 LP판 음악은 CD나 MP3와는 확연히 다른 소리였다. 귀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 그가 소장한 LP음반들과 음악장비들.
주파수가 다른 LP소리
대호볼링장을 운영하는 유석무 씨는 음악광(狂)이다. 육중하게 굴러가는 볼링공 소리와 통쾌하게 흩어지는 볼링핀 소리로 정신없는 볼링장 저 안쪽에 그만의 작은 공간이 숨겨져 있다. 그곳엔 1만여 장의 LP와 5000장이 넘는 CD가 있다. 그리고 진공관 오디오와 턴테이블 등 다양한 음악장비를 갖췄다.
“LP로 듣는 음악이 CD 음악보다 더 감동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단지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공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이죠. CD가 깨끗한 음질로 귀를 만족시킨다면, LP는 가슴을 만족시켜요.”
그에 말에 따르면 CD의 주파수는 귀로만 들리는 파장인 반면 LP의 주파수 파장은 온몸으로 소리가 전해진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느낌까지 전하는 것이며, 사람은 귀로만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음악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 매력에 빠진 지 어느덧 36년이 흘렀다.
▲ 그가 소장한 LP음반들과 음악장비들.
수업료 몽땅 털어 음반 구입
LP에 대한 그의 첫 기억은 중학생 때다. 대성목욕탕집 아들이던 그가 어깨 너머로 들은 팝송을 들리는 대로 한글로 옮겨 적어 부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팝송을 부르다 보니 영어를 잘하게 됐는데, 다른 과목은 썩 잘하지 못하던 그를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더 열심히 팝송을 들었다. 당시에 듣던 노래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였다. 고산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가져온 뮤직센터(턴테이블과 엠프 등이 일체형으로 합쳐진 오디오 시스템)를 아버지가 구해오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니 자연스레 LP를 모으게 됐다. 수업료를 LP사는 데에 다 써버릴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오로지 구하고자 하는 LP음반을 사기 위해 일부러 일본을 간 적도 있단다. 양희은·산울림·이문세 등 추억을 자극하는 앨범부터 에미넴과 같은 최신 음반까지, 한국·미국·일본·네팔·아프리카 등 국적을 초월한 음악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포크송·락·힙합·국악·종교음악 등 들어 보지 못한 희귀한 음악들이 넘쳐났다.
유석무 씨는 “다양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어야 문화예술이 더욱 풍부해 질 것”이라며 “요즘엔 음악 장르를 비롯해 사람들의 관심이 대중적 인기에 너무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음악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건 그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아쉬움 또는 상처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너무나 사랑해서 녹음기사로 일하며 음반제작일도 한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관련 일을 하다가 지난 2006년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지역에서 음악 일을 하며 꿈을 펼치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다.
“지역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많아야 해요. 물론 그들이 중앙 무대에 있는 사람들보다 실력이 떨어질 순 있죠. 하지만 그들을 지켜내고 키워주는 역할을 지역사회가 해야 하는데, 지역 음악가들의 노력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음악을 하는 목적이 결국엔 수익, 곧 돈이 돼버렸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중음악에 편중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유석무 씨는 주목받지 못하는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당진의 인구가 늘어나고 계속해서 발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문화적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음악은 곧 삶”이라는 그의 바람은 지역에서 음악을 ‘듣는’ 모임을 만드는 거다. 사람들이 모여 각자 의미 있는 곡,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모임을 통해 음악으로 위로 받고, 서로의 삶을 음악으로 공유하고 싶단다. 하루에 1장 꼴로 LP음반을 산다는 그는 매일매일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그리고 또 다시 ‘음악여행’을 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