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1 · 지역사회 · 임아연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내경리의 작은 포구들 2조수 따라 고래가 드나들던 내경리
내경리(內鯨里) 지명은 고래가 조수를 따라 들어왔다가 죽은 후 그곳에 제방을 쌓은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내경리는 오래전부터 고래가 많이 발견된다고 하여 ‘고래원’이라고도 불렸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 내경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는데 조수 차가 …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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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건 · '우현선의 포구' · 최근 기사부터2 / 5쪽
2023.01.01 · 지역사회 · 임아연
내경리(內鯨里) 지명은 고래가 조수를 따라 들어왔다가 죽은 후 그곳에 제방을 쌓은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내경리는 오래전부터 고래가 많이 발견된다고 하여 ‘고래원’이라고도 불렸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 내경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는데 조수 차가 …

2022.12.09 · 환경·안전 · 임아연
안식교 사업장이 개발된 이후에도 얼마간은 갯물이 들어와 대두런포구에 배를 정박할 수 있었다. 포구가 완전히 소실된 것은 삽교천방조제의 건설이 시작되면서부터다. 1939년생인 김재운 씨의 기억으로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대두런포구에는 어선이 20여 척…
2022.11.0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소반리 마을회관에서 옛 대두런포구의 위치를 찾아가자면 소포의 옛 제방을 지나게 된다. 승용차 한 대가 빠듯하게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마을 안길은 1970년대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 소포로 바닷물이 넘치는 걸 막아주던 제방이었다. 옛 제방을 중심…
2022.10.14 · 정책·행정 · 당진시대
…10~1940년 일제강점기에는 소들강문의 곡물을 수송하는 당진군 최대의 포구로 번창했었다. 일제강점기의 운임은 쌀 한 말이 80전 할 때 인천까지 1원20전이었다. 30여 년 전 배표 팔 곳은 김연수 씨 집이고 부리포 취급소를 운영하던 사람은 강문리 …
2022.09.3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장원식 씨는 1960년대부터 삽교천 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 리 앞바다(지금의 삽교천 하구)에서 눈장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눈장에 사 용되는 말뚝은 신평에 배를 대고 인근 산에 가서 사왔다. ”우리는 눈장이라고 말뚝 받아놓고 그물 쳐 놓고…
2022.09.27 · 문화·교육 · 한수미
덕산이 고향인 김창순 씨는 1960년에 결혼해 신촌리 수문통에 자리 잡았다. 산촌 고향마을을 떠나 온 새댁에게 바닷가 마을 수문통은 낯설기만 한 풍경이었다. 김창순 씨의 남편은 수문통에서 배를 몰고 아산만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다. 처음에는 시동생과 함…
2022.09.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수문통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장원식 씨는 13세부터 어업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의 기억에 따르면 수문통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가구가 거주했으며, 생선을 사러 온 상인들과 인천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온 승객, 쌀을 실어 나르는 인부들로 늘 붐볐다…
2022.09.02 · 지역사회 · 임아연
…람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 왔다. 가장 큰 피해는 농사처의 염해였다. 포구에 가옥이 밀집하였던 수문통의 경우 집 안까지 바닷물이 범람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에는 여기 수문통 부근 둑이 한 번 터진 걸 내가 봤어. 둑이 터져서 물이 넘쳤지. 그때는 …

2022.08.29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을 싣고 부릴 만한 부두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우강면 일대의 포구에서는 배 갑판에 기다란 나무판을 걸쳐 배에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수문통을 오갔던 인천행 여객선이나 화물선의 입출항은 모두 물때에 맞춰 이뤄졌다. 만조 시에 수문통에 들어온…
2022.08.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일제강점기부터 인천행 여객선이 당진의 여러 포구를 왕래했다. 수문통은 이 여객선의 기착지 중 한 곳이었다. 인천행 여객선은 송악의 한진과 신평의 맷돌포·공포(운정)를 거쳐 우강의 남원포, 수문통을 지나 강문리의 부리포까지 드나들었다. 하지만 점차 토사…
2022.07.2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수문통은 우강면 신촌리 3반으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삽교천 물줄기가 신촌리와 부장리의 경계로 갈라지는 지점 튀어나온 곶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곳을 우평포(牛坪浦)라 칭했다. 1960년대까지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던 수문통은 조수간만의 …
2022.07.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정기수 씨의 배에는 선주인 자신을 포함해 모두 네 명의 선원이 함께 탔다. 동력 장치 없는 풍선(風船), 돛배였다. 선원들의 월급은 잡은 물고기로 지급했다. 판매는 당시 하리에 살던 어촌계장 홍헌팔 씨가 주로 맡아서 해주었다. 물때는 밤하늘 달을 보고…
2022.07.0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기 전에는 복(伏) 중이면 삽교천에서 해파리도 잡혔다. 정기수 씨는 운정포구의 한 어민에게 해파리잡이에 필요한 어구를 빌려 사용했다. “해파린 복 때나 잡어. 초복·중복·말복이 지나면 없어지는디, 저 구양도다리께 저쪽 막은디 그 골이 원 큰 골이었어.…

2022.06.2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강면 주민들은 옛 포구에 대한 기억으로 모두 ‘이합’을 언급했다. 껍데기가 하얗고 바지락과 유사한 이합 조개는 썰물 때면 드러나는 삽교천 갯고랑에 지천이었다. 부장리 사람들도 너나할 것 없이 이합을 채취해 먹었다. 특히 이합칼국수는 뽀얗고 감칠맛 나…
2022.06.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한때는 남원포구에 어선이 수십여 척이 정박했다고 하나, 구술에 참여한 주민들은 1960년대를 전후로 포구에 어선은 많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대신 부장리의 어선들은 남원천을 따라 곳곳에 정박했다고. 주로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부장리에 정착한 피난민들…
2022.04.2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강면 부장리와 신평면 신흥리, 신당리 사이로 흐르는 남원천에는 남원포교(구교)가 놓여있다. 이 다리는 애초에 나무다리였으나 1965년 10월 5일부터 1966년 11월 13일까지 총연장 14m, 폭 6m, 설계하중(DB) 13.5톤, 통과하중 54톤…
2022.04.25 · 문화·교육 · 당진시대
…함께 나누고 주고받았다. 정희기 작가와 김지민 작가의 콜라보가 그렇고,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에서 출발한 정만영 작가의 ‘진과곶’ 전시가 그렇다. 이는 다시 참가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일상과 작업 어떤 요소요소에 닿아 작은 영감 혹은 리프레시(refres…
2022.04.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한 남원포구는 강문리의 사발포(부리포)와 더불어 1970년대까지 우강에서 가장 번화한 포구였다.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으며, 남원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부장리농협이 설립되면서 부장리는 물론, 인근 마…
2022.03.30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원종성 씨는 어린 시절부터 삽교천을 건너 예산과 아산의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당시에는 합덕들녘과 해안가에 나무할 만한 곳이 없어 흔히들 삽교천을 건너가서 땔감을 구해오곤 했다. 그는 예산 하평리에서 아산 신종리를 오가던 나루를 도고나루로 기억했…
2022.03.23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도로와 교통수단이 발달되기 전 수로는 육로보다 더 중요한 교통로였다. 특히 내륙수로에는 나루가 있어 하천을 사이에 둔 양쪽 지역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나루는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을 말한다. 합덕에는 앞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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