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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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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28건
연도
2020년

28건 · '우현선의 포구' · 2020년 · 최근 기사부터2 / 2쪽

  1. 2020.03.0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7 피난민들 어업에 종사하며 어업기술 보급

    …은 대게 황해도에서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이거나, 논·밭이 많지 않은 곳 포구에 정착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거리가 어업이었기 때문이란 것이 구술자들의 말이다. 박상진 씨는 “깔판포구에 터를 잡은 피난민 대부분이 바닷일을 해서 먹고 살았고 조금씩 돈을…

    당진시대
  2. 2020.03.06 · 문화·교육 · 박경미

    [독자와의 만남] 임광빈 당진중학교 교감“다양한 학교 소식을 전해주세요”

    … 물론 정치인들이 꼭 읽어야 하는 기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연재기사도 챙겨본다는 그는 지역의 유래를 다뤄 쭉 연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그는 교육 면에서 다양한 학교들의 소식을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

  3. 2020.03.02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6 바닷길 따라 피난 온 사람들

    …민이 발생했다. 이때 당진에도 피난민들이 배를 타고 대거 유입됐다. 맷돌포구 역시 피난민들의 유입지 중 하나였다. 맷돌포구와 깔판포구를 통해 유입된 피난민들은 매산리와 신흥리 등에 정착촌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난민들은 초기에 주민들의 집마다 방…

    당진시대
  4. 2020.02.25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5 강화도 어선, 맷돌포에 어막 짓고 조업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맷돌포구가 가장 번성했던 당시, 대부분의 어선은 강화도 등지에서 온 것이었다. 강화 사람들은 중선, 꽁지배들로 봄부터 초겨울까지 맷돌포구에 머물면서 고기를 잡았다. 이들은 주로 봄철에 준치를 잡고, 뒤이어 숭어·꽃게…

    당진시대
  5. 2020.02.1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4시계도 흔치 않던 시절 어부들의 지혜

    …를 저어 썰물 때 송산을 거쳐 국화도 앞까지 갔다가, 밀물 때 다시 맷돌포구로 돌아오며 고기를 잡았다. 준치·삼치 등이 주 어종이었단다. 어망은 그물을 고정시켜 잡는 낭장망을 사용했다. 박 씨는 낭장망이 6.25전쟁 때 피난 와서 정착한 황해도 사람들…

    당진시대
  6. 2020.02.07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3 목선·유자망·중선·닻배에 대한 기억

    …을 잡아 올렸던 그 당시의 어선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70년대 맷돌포구 앞바다에 가득했다는 배들은 모두 목선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FRP(섬유강화플라스틱)선 건조를 장려하면서 보급이 확산되기 전까지 선체가 나무로 된 목…

    당진시대
  7. 2020.02.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2 그 시절, 그리운 맛 ‘준치’

    1960~70년대의 맷돌포구에서 잡힌 어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꽃게와 꽃새우 그리고 준치였다. 헌데 유독 ‘준치’에 관한 대목에서는 구술자 모두 군침까지 삼키며 “그것만큼 맛있는 생선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썩어도 준치’란 말을 실제 경험해보…

    당진시대
  8. 2020.01.2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70년대 맷돌포구는 ‘고기광’이었지”[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1

    <편집자주>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은 지난해 당진시가 추진한 당진포구문화구술사연구용역을 맡아 진행했다. 이 연구는 포구 일대의 주민들을 인터뷰해 당진지역 포구의 주민 생활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기록하고 연구한 것이다. 본지는 연구용역보고서의 …

    당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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