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은 전통적으로 육로교통보다는 해로교통이 발달한 도시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와 내륙 깊숙한 내만의 항구를 겸비한 당진은 해로 교통로와 연결되어 각 왕조의 곡간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국제 항구의 역할도 하였다.

경상도의 김해평야와 전라도의 김제평야도 연안에 연접한 평야이긴 했지만, 태안반도의 험란한 항로와 잦은 파선으로 인해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곡창지대와 발달된 해로교통로 때문에 당진은 한국역사의 중요한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후삼국 시대에는 보급기지 쟁탈전을 위해 고려와 후백제 간 4차례의 격전지가 됐다. 결국 이 전쟁에 승리한 왕건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대몽골 항전에서 강화도로 파천한 고려 정부가 60년 동안 항거할 수 있는 보급기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시 피점령지로서 전시 동원 체계의 최대 보급기지 역할을 하면서 수탈에 못 이긴 면천의 한현과 청양의 이몽학이 1597년 내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병자호란 시에도 강화도로 피난간 조선 정부에게 당진은 중요한 젖줄이 되었다.

조선 후기 금난전권이 폐지되고 사설 시장이 발달하면서 해로로 유입된 물류와 내만 깊숙한 내륙의 물류가 교차되어 당진은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12장(한 달에 12번 장)이 서는 곳이 당진장, 면천장, 기지시장이 있을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일본은 조선의 식량과 광물자원의 수탈을 위하여 주요 항구를 강제 개항하고 1899년 경인선 철도 개설 1905년 경부선 철도 개설, 경의선 철도 개설, 1911년 호남선 철도 개설, 1931년 장항선 철도 개설을 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일제는 도로 건설도 하였는데 이 또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수탈을 위한 것이었다.

장항선의 연결로 당진은 해로교통의 요지에서 교통의 오지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고 20c 말까지 한국의 주요 정책에서 소외된 도시가 되었다.

1986년 당진 평택항 개항과 200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으로 당진은 전통시대의 해양교통 요지로서 역할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데, 여기에 합덕역 개통과 이와 연결된 석문산단 인입철도는 육해상 물류시스템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반복은 똑같이 다가오지 않는다. 시대 상황이 변화된 반복인 것이다. 범선은 대형선박으로 곡창지대는 대규모 국가공단으로 변하였고 철도는 물류뿐 아니라 우리의 관광지로 경인권의 관광객을 안내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배우, 헤이든 원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 하였다. 해로교통의 요지⇒교통의 오지⇒항만, 철도, 고속도로와 국가공단을 두루 갖춘 당진! 반복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뼈를 깎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다시, 오지의 역사로 환원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