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에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역사가 담겨있다. 오랜 세월로 건물이 낙후돼 때에 따라 공소가 폐쇄되기도 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신평성당에는 현재 △원머리공소(한정리공소) △새터공소(매산리공소) △음섬공소(음샘공소) △신당리공소가 남아있다. 한편 전대리공소는 신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건물 낙후로 설립한 지 40년 만인 지난 6월 폐쇄됐다.
또한 금천리공소, 운정리공소, 초대리공소, 거산리공소 등 여러 공소들도 신평성당 설립 전까지 자리했고, 1975년 신평성당이 세워지면서 4개의 공소들은 1992년 공소의 역사를 다했다. 하지만 원머리공소, 새터공소, 음섬공소에서는 공소예절을 하지 않을 뿐 신자들의 단합과 화합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며 주임신부가 직접 부활·성탄 판공성사를 집전하거나 레지오 등 성당 행사를 위해 사용한다.
김동규 신평성당 주임신부는 “신평성당 신자들은 낡고 오래된 공소이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알고 공소를 보존하는데 힘쓰고 있다”며 “공소 현판식과 더불어 주변 정리 등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머리공소
신평성당에서 한정교를 건너면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소나무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원머리성지가 보이고, 원머리성지 맞은편 빨간 지붕의 건물이 바로 원머리공소다.
원머리공소는 신평성당 소속 가장 오래된 역사의 공소다. 공소는 2층에 성가대가 있었을 정도로 크고 신자도 많았다. 무엇보다 원머리지역에는 신자들과 비신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으며 농·수산업을 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해진다. 병인박해가 끝나고부터는 원머리공소가 설립되면서 근처에 여러 공소가 세워졌다.
새터공소·음섬공소
원머리성지에서 나와 새터길로 쭉 나오면 새터공소가 보인다. 196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원머리공소 신자보다 새터공소의 신자가 약 50명이 많았다. 이에 행정구역상 음섬과 같은 마을에 속한 새터공소가 점점 커지자, 1916년 경부터 음섬공소를 분리했다.
음세미 또는 음섬이로도 불렸던 음섬은 3면이 바다로 돼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1780년대 후반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됐고, 병인박해 시기에 완전히 파괴됐다. 박해가 끝난 후 음섬의 피아티라는 곳에서 공소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단어가 피난터가 변화된 말이라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