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굽던 전형적인 천주교마을-구룡리 공소

선교ㆍ노동하던 가마터는 우거진 솔숲밑에 묻히고

과거 박해받던 천주교인이 있는 곳에는 열이면 아홉 옹기가 있었다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도피생활 가운데에서도 선교를 하고 신성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다. 당진읍에 있는 구룡리 공소는 그러한 전통을 기억속에 담고 있는 곳이다.

현재 이 공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전용구(71세)씨는 90년전 자신의 조부가 공소회장을 맡을 당시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에는 이 공소에서 참례하는 교인가족이 70세대는 족히 되었다.

이 옹기공장은 이 일대 교인들의 중요한 생업이기도 했지만 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아와 이들에게 교화되곤 했다. 말하자면 이때가 공소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20년전 옹기공장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농촌을 떠나 지금 이곳은 가구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성당초등학교 뒤로 가보면 초록색 기와지붕을 얹고 있는 공소가 고요히 입을 닫고 있다. 5년전부터 당진구역으로 편입이 된 것이다. 사순절인 요즘에 와서야 몇사람이 묵상하러 찾곤 한다.

구룡리에 공소가 처음 생긴 것은 적어도 100년전의 일이다. 전용구 공소회장과 전회장 박종대(73세) 옹에 따르면 공소가 생긴지 61년만에 공소환갑잔치를 벌인 것이 자신들이 스무살 남짓한 때였다. 1947년 지금의 아늑한 자리로 공소를 옮기고 난 뒤였다.

“국민학교 때만 해도 큰 참례가 있을 때면 구합덕 본당까지 40리 길을 걸어서 다녔지.”

전용구 회장의 말에서 세월무상의 느낌이 전해진다.

“지금 저기 소나무 우거진 곳이 가마터가 있던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