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판공성사가 있는 날을 기다렸어요. 그날은 마을의 잔치날이었거든요. 판공성사 때는 신부님이 보충예식(보례)을 해주시는데 그날에는 평소에는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교우들과 함께 먹었어요.”

구합덕성당 신자들의 공소에 대한 추억은 성당의 역사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어릴적부터 공소예절을 했던 공소를 여전히 추억하고 있다.

구합덕성당의 관할 공소는 △양촌공소 △상미공소 △하흑공소 △세거리공소 △거더리공소 총 5개이다. 양촌공소와 상미공소는 행정구역상 고덕에 위치하지만 구합덕성당이 관할한 공소다. 하흑공소는 합덕 신석리에 위치한 공소이며, 세거리공소와 거더리공소는 삽교천 건너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위치한 신리공소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합덕에 위치한 공소들은 마을 단위로 만들어졌기에 공소와 공소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 합덕에 있는 공소의 특징이다.

합덕의 경우에는, 본당이 타 지역의 본당보다 먼저 생겼다. 합덕본당은 충청도 최초의 성당이다 보니, 초대신부인 퀴를리에 신부(1890년대)는 당진, 덕산, 서산, 예산은 물론이고 평택, 수원, 아산, 공주, 안성까지 충청도 25개의 지역의 공소들을 직접 다니며 미사를 집전해야 했다. 이에 초기의 신부들은 본당보다는 공소에 더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후에 본당이 생기면서 공소의 관할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합덕본당의 2대 신부인 크램프 신부 때에는 공세리성당이 생기면서 천안과 평택이 공세리성당의 관할로 지정됐다. 또한 일제시대 때만에도 옹기 굽는 공소가 많았다. 이는 공소가 신앙적 공동체는 물론 삶의 공동체이기도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양촌공소는 합덕성당의 옛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촌공소는 제1대 신부인 퀴를리에 신부가 파견된 곳으로 1899년에 양촌성당(현 양촌공소)이 합덕본당으로 이전되고, 명칭이 변경되면서 양촌성당이 양촌공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후 양촌공소의 건물이 낙후되면서 1949년 바로 옆에 공소강당을 새로 짓고, 양촌공소를 철거했을 때 나온 재료를 가져와서 재건축을 했다. 이에 공소강당을 새로 지은 집의 소재는 초창기 양촌본당 건물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기에 의미는 이전의 역사와 가치를 포함한다.

김성태 요셉 구합덕성당 주임신부는 “공소는 한국천주교를 보여주는 그릇이자 교우들의 신앙과 삶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