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성공소의 모습
▲ △산성공소의 모습

[편집자주] 내포지역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를 이룬 천주교는 당진지역에 급속도로 전파됐다. 당진지역에는 여러 교우촌이 형성됐고 신앙의 못자리로 불리게 됐다. 교우촌에서 공소로, 공소에서 본당으로 세워진 역사와 지역 내 자리했던 공소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하고자 ‘당진지역 공소를 느끼다’를 총 5회에 걸쳐 취재·보도할 예정이다.

당진성당에는 역사가 깊은 공소가 많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인구 감소와 교통의 발달로 여러 공소들은 하나로 통합됐다. 14세 때부터 사성공소를 다니던 이종영 돌마루공소회장은 1996년부터 돌마루공소에서 공소예절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현재 사성공소의 건물은 낡고 헐은 채로 그 자리에 남아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당진성당에는 △당진포공소 △돌마루공소 △삼봉공소 △초락도공소 총 4곳의 공소가 있다. 천주교 당진본당사 70주년 기념집을 바탕으로 역사가 깊은 공소를 소개한다.

마새공소

마새공소는 대호지면 마중리에 위치한 공소로 원래 서산성당의 관할이었다가 1967년 당진성당에 편입됐다. 현재 마새공소 자리에는 낡은 강당 건물만 남아있지만 당진성당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또한 마새공소에서는 학교를 운영했는데, 학생이 9명인 작은 규모의 학교로 비신자인 교사가 학교를 운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1920년부터는 일제탄압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신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강당이공소·미럭벌공소

강당이공소는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자리해 있다. 강당이공소도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병인박해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당이공소의 경우 미럭벌공소에 편입돼 판공을 치르다, 1919년부터 미럭벌공소로 통합됐다. 합덕성당이 설립될 때에는 강당이공소는 합덕성당 관할공소이기도 했다. 이후 서산성당과 당진성당을 오갔다. 이후 1974년 운산성당이 설립된 이후 운산에 편입돼 용현리공소가 됐다. 한편 미럭벌공소는 인근에 미륵불이 있어 지어진 이름으로, 운산지역을 대표하는 공소로 강당이공소와 같이 서산과 당진성당을 오갔다.

산성공소

현재 산성공소의 현대식 강당건물이 정미면 산성리에 남아있다. 산성공소도 서산성당 관할이었지만 1967년 당진성당에 편입됐다. 한국의 산업화에 따라 농촌인구가 감소하면서 공소 교우들도 줄어들었고 1996년 돌마루공소에 편입됐다.

산성공소의 경우, 1898년에 세워진 염솔공소가 1900년부터 산성공소로 대체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1996년 공소 주변에 위치한 사성·마중·천의·도산·봉성공소들과 함께 돌마루공소로 통합됐다.

사기소공소·여미공소

사기소공소의 교우들 대부분이 옹기를 굽는 일에 종사했고 인원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1898년엔 위 사기소와 아래 사기소로 나누어 판공을 치르기도 했다.

여미공소는 미럭벌공소에 소속돼 있다가 교우가 증가하면서 독립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미공소는 서산성당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가 정미면이 당진군에 편입되자 교회 관할구역도 변경돼 당진성당으로 편입됐다. 현재 여미리는 서산 운산면으로 편입돼 있어 현재는 운산성당에 속해있다.

송악읍 부곡공소·복운공소

송산면 당산공소·송산공소

부곡공소는 한 교우의 큰 방에서 모임으로 공소가 시작됐고 오곡리와 한진리의 일부 교우들이 함께했다. 또한 복운공소는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후손들에 의해 시작됐다.

한편 당산공소는 규모가 작아 다른 공소에 편입돼 공소를 치렀기 때문에 신부가 기록한 공적 보고서에 나타나지 않은 공소들이다. 당산공소는 사랑방 공소로 시작됐다. 현재 당산공소는 기지시성당의 관할 공소가 됐다. 또한 송산공소는 교우가 늘어나자 삼월리에 강당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지시성당이 새롭게 설립됨에 따라 이에 편입됐다.

항곡공소·구룡공소

항곡공소는 전쟁이 끝난 1950년대를 거치면서 크게 성장했다. 항곡리 안에 별도로 중흥공소라 불리는 사랑방 공소가 생겼고 얼마 후 항곡공소에 통합됐다. 구룡공소는 사기소공소에 편입돼 있다가 교우가 증가하면서 독립된 공소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