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하겠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자연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애써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 역시 충청도를 닮았다. 문장에 장황한 사설이 없다.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내용은 겸허하고 꾸밈이 없다. 꾸밈이 없으니 작위적이지 않다. 작위적이지 않으니 서정적이다. 자연을 경배하고, 고향을 노래하니 작위적일 수 없다. 그래서 이근배 시인은 김규환 시를 두고 ‘자연 회귀의 천착’이라고 평했다.”
- 지은이 우희창
당진문화재단이 ‘2024당진문화예술인기록사업’의 일환으로 다섯 번째 당진문화예술인 구술총서를 발간했다. 이번 구술총서의 주인공은 시인 김규환이다. 이번 책은 모두 구술로 이뤄졌다. 20년 이상 가꿔 자연 그대로의 고대면 소재의 그의 생가에서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의 구술 조사가 이뤄졌다. 누군가에게 내 일상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자신의 속 이야기를 글로 표현한다는 시인도 쉬운 일만은 아녔을 것이다. 차근히 시인으로서의 김규환, 교사와 교육행정가로서의 김규환을 비롯해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의 일생을 채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김규환 시인의 문학 생애와 철학까지. 구술 채록을 맡은 우희창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인터뷰 말미에 ‘흙에서 태어났으니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시인의 삶이 곧 ‘자연으로의 회귀’이다. 그의 문학 생애사를 정리하면서 ‘김규환의 삶 자체가 시면서, 그의 시가 곧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25년 만에 태어난 장손
이번 김규환 시인의 구술 총서에는 총 5장으로 나눠 그의 생애가 수록됐다. △제1장 인성교육에 눈뜬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교사 꿈을 키운 청년 시절 △열정적이었던 교사 생활 △교육행정가 시절 △김규환 시인의 문학 생애와 철학이다.
고대면 슬항리 태생의 김규환 시인은 25년 만에 태어난 집안의 장손이었다. 태어나는 순간 경사가 났고, 가족 모두가 애지중지 키웠다. 식사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할아버지 밥을 가장 먼저 차리고 그다음 어린 김규환 시인의 밥을 챙겼을 정도였다. 한학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어린 장손에게 한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때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한자가 시인의 자질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집안 전체의 사랑을 받고 자란 그에게 아버지의 사랑은 낄 구석이 없었다. 아버지는 토목기사로 현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었다. 아버지는 경성공업전문학교(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통합, 흡수)를 졸업하고 토목 일로 부산 수영 비행장 건설 현장에 근무했지만, 오래 일하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고향을 되찾았다.

투병하던 아버지는 김 시인의 나이 중학교 2학년 때, 39세의 생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가 고작 14살이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일찍이 한 부모 슬하에서만 자랐다. 어머니 혼자 생계를 이뤘고, 어머니와 집에 남겨진 가족 걱정에 집을 떠나 공주사대부고에 입학해서도 아쉬움이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고.
공주사대부고에서 키우기 시작한 교사의 꿈
공주사대부고에 입학한 그는 교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공주사범대학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소재의 금지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교사 생활을 이어갔다.
금지중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당진에서 천안까지 간 다음 천안역에서 풍년호를 타고 남원읍까지 최소 5시간을 달려야 했다. 그리고 남원역에서 내려 다시 금지면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8시간만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충청도 선생’이라 불리며 즐거운 교직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후에 남원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올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현재 당진정보고인 당진상고로 전근 명령을 받고 다시 고향, 당진을 찾게 된다. 그렇게 교감까지 승진, 이후 덕산고로 부임하게 된다. 장학사 활동에 이어 교장으로 승진하고, 당진교육장을 거쳐 마지막은 고향에서 첫 교직 생활을 했던 당진정보고 교장으로 퇴임하게 된다.
나루문학회 창립부터 다양한 문학단체 활동
교직에서 내려온 후에 김 시인은 활발한 문학 활동을 이어간다. 1980년, 당진의 첫 문학 단체인 나루문학회 창립 멤버로 나서기도 했다. 나루문학회는 매년 동인지 발간을 비롯해 필경사가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청원하고, 윤곤강 시인의 묘비 표석을 건립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1989년에 <시와 시론> 제41집에 투고한 ‘고향 첫차’와 ‘고향 밤길’로 늦깍이 등단을 하게 된다. 등단을 기점으로 자신의 문학 세계도 더 깊이 파기 시작했다. 1992년, <그리움의 활주로>라는 제목으로 첫 시집을 발행했으며, 이후에도 차례로 <파도를 모으는 섬>, <오늘>, 시선집 <별소리가 들린다>를 펴냈다.
또 1980년대 중반에는 서안시문학회에 참여해 활동도 했다. 나태주, 안용산, 진명희, 구재기, 윤여홍, 김순일, 문상제, 박만진 등이 참여하는 충남을 대표하는 시 문학회였다. 그리고 공주사범대학 출신 문인들의 문학단체인 ‘곰나루문학회’와 국내 최장수 지령을 자랑하는 시 전문 동안지 ‘시도동인회’에도 참여하게 된다.
많은 활동 중에서도 그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바로 새천년 시비 제막이다. 2014년, 석문면 교로리 왜목마을에 ‘보내는 천년, 맞이하는 천년’ 김규환 시인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 그의 문학생애사에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었다. 이밖에도 매년 그의 시 <호국영령 앞에>가 낭독되고 있다.
그의 유년부터 시작해 문학 생애까지 많은 이야기가 이 구술 채록에 담겨 있다. 시인은 “내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준 당진문화재단과 당진시에 감사하다”며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한 내 인생을 다른 이에게 보여 준다는 것이 의미있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