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 돌봄 ’ 이라는 글자가 중요한 검색 키워드에 오르고 있다 . 며칠 전 학교 방과후 돌봄교실에서 일어난 너무나 슬픈 사건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 이미 2000 년대 들어 저출산 .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인구절벽 , 출산율 세계 최하위 , 초고령사회 진입 등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해 나라 전체는 이 돌봄이라는 키위드가 정책 반영에 기본이 되었다 .

이런 어려움을 감지하고 2005 년은 가족을 위한 정책 변화에 중요한 해였다 . 국가가 가정 , 가족의 삶에 개입이 시작되어 건강가정지원법이라는 법도 발현되고 , 뒤이어 2007 년에는 아이돌봄지원법이 제정되어 현재 우리가 하는 가정으로 직접 부모의 양육 부담을 경감하고 저출산문제에 대응하는 아이돌봄지원 사업이 시작 되었다 . 즉 돌봄의 사회화가 시작 된 것이다 .

우리가 자랄 때 만 해도 당연히 엄마는 아이들을 돌보고 아니면 할머니가 그 공백을 대신하고 심지어 형제 , 자매가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 그러나 나라가 산업화가 되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가정에서 돌봄의 주역을 맡아 주었던 엄마들 즉 여성들의 빈자리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 심지어 요즘은 젊은 부부는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고 , 이런 상황은 결혼을 기피하고 심지어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커플도 늘고 있다 . 그러면서 심지어 반려견을 자녀 삼아 키우는 커플도 흔하게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들은 굳이 자녀는 필요하지 않으면서 엄밀히 말하면 자녀를 낳기를 포기하고 왜 반려견에 온갖 정성을 쏟는 것인지 .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기본 욕구에는 누군가를 돌보고 싶어 하고 그 행위를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 이렇듯 돌봄에는 물질적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물론 땀을 흘려야 하는 수고와 책임 등 비물질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함에 대한 이중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

일찍이 돌봄 경제학에 관해 이야기했던 학자 낸시 포브레 (Flobre) 는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노동을 “ 보이지않는 가슴 (invisible heart)” 라고 표현하였다 . 가슴이라고 번역이 되어 책이 나왔지만 심장이라고 번역할수 있는 heart 라는 언어가 주는 그 의미는 더욱 강렬한 듯 하다 . 심장은 생명의 근원이 되고 그것이 멈추면 의학적 죽음을 선언하듯 그런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 돌봄의 가치에 녹아져 있다고 생각이 된다 .

인간이 태어나 누구의 돌봄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 할 수 없고 , 또 누군가를 돌보는 인생의 과업을 감당하고 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또 누구의 돌봄과 수고가 필요하지 않은가 !

그래서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아이돌봄지원사업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국가사업으로 20 년 가까이 자리매김해 가고 있고 , 이제 내 가족을 돌보는 손자녀돌봄과 부모돌봄을 하는 인력에게도 나라가 국비를 쏟아 붓고 있다 .

나라 전체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충남도 작년 말 인구 전략국을 만들고 “ 풀케어 정책 ”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돌봄정책에 접근하고 있다 . 그러나 과연 이 순간 우리는 물질로 그 댓가의 전부를 지불하는 것이 최선일까 !

다행히 얼마전 이런 저런 노력의 결실인지 출생율의 감소가 멈추고 반등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 이럴 때 우리 모두는 포브레 (Flobre) 가 말한 “ 보이지않는 가슴 (invisible heart)” 즉 돌봄에 대한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깊히 생각해 보는 중요한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

현재 우리나라는 ‘ 돌봄 ’ 이라는 글자가 중요한 검색 키워드에 오르고 있다 . 며칠 전 학교 방과후 돌봄교실에서 일어난 너무나 슬픈 사건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 이미 2000 년대 들어 저출산 .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인구절벽 , 출산율 세계 최하위 , 초고령사회 진입 등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해 나라 전체는 이 돌봄이라는 키위드가 정책 반영에 기본이 되었다 .

이런 어려움을 감지하고 2005 년은 가족을 위한 정책 변화에 중요한 해였다 . 국가가 가정 , 가족의 삶에 개입이 시작되어 건강가정지원법이라는 법도 발현되고 , 뒤이어 2007 년에는 아이돌봄지원법이 제정되어 현재 우리가 하는 가정으로 직접 부모의 양육 부담을 경감하고 저출산문제에 대응하는 아이돌봄지원 사업이 시작 되었다 . 즉 돌봄의 사회화가 시작 된 것이다 .

우리가 자랄 때 만 해도 당연히 엄마는 아이들을 돌보고 아니면 할머니가 그 공백을 대신하고 심지어 형제 , 자매가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 그러나 나라가 산업화가 되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가정에서 돌봄의 주역을 맡아 주었던 엄마들 즉 여성들의 빈자리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 심지어 요즘은 젊은 부부는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고 , 이런 상황은 결혼을 기피하고 심지어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커플도 늘고 있다 . 그러면서 심지어 반려견을 자녀 삼아 키우는 커플도 흔하게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들은 굳이 자녀는 필요하지 않으면서 엄밀히 말하면 자녀를 낳기를 포기하고 왜 반려견에 온갖 정성을 쏟는 것인지 .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기본 욕구에는 누군가를 돌보고 싶어 하고 그 행위를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 이렇듯 돌봄에는 물질적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물론 땀을 흘려야 하는 수고와 책임 등 비물질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함에 대한 이중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

일찍이 돌봄 경제학에 관해 이야기했던 학자 낸시 포브레 (Flobre) 는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노동을 “ 보이지않는 가슴 (invisible heart)” 라고 표현하였다 . 가슴이라고 번역이 되어 책이 나왔지만 심장이라고 번역할수 있는 heart 라는 언어가 주는 그 의미는 더욱 강렬한 듯 하다 . 심장은 생명의 근원이 되고 그것이 멈추면 의학적 죽음을 선언하듯 그런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 돌봄의 가치에 녹아져 있다고 생각이 된다 .

인간이 태어나 누구의 돌봄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 할 수 없고 , 또 누군가를 돌보는 인생의 과업을 감당하고 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또 누구의 돌봄과 수고가 필요하지 않은가 !

그래서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아이돌봄지원사업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국가사업으로 20 년 가까이 자리매김해 가고 있고 , 이제 내 가족을 돌보는 손자녀돌봄과 부모돌봄을 하는 인력에게도 나라가 국비를 쏟아 붓고 있다 .

나라 전체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충남도 작년 말 인구 전략국을 만들고 “ 풀케어 정책 ”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돌봄정책에 접근하고 있다 . 그러나 과연 이 순간 우리는 물질로 그 댓가의 전부를 지불하는 것이 최선일까 !

다행히 얼마전 이런 저런 노력의 결실인지 출생율의 감소가 멈추고 반등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 이럴 때 우리 모두는 포브레 (Flobre) 가 말한 “ 보이지않는 가슴 (invisible heart)” 즉 돌봄에 대한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깊히 생각해 보는 중요한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