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는 4월 2일 충남도의회 당진시 제2선거구(송악·송 산·신평) 재선거가 치뤄진다. 더불어민주당 구본현, 국민의힘 이해선, 조국혁신당 한광희, 진보당 오윤희 예비후보가 출마해 경쟁한다. 이번 호에서는 이해선 예비후보를 만나 출마의 변을 듣는다.

송산면 출신이다. 학창 시절 이해선은 어떤 학생이었나?

공부도 그런대로 했지만 나름 리더십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까지 반장을 도맡아했고 과학반, 독서반, 웅변반, 방송반 등 특별활동도 열심히 했다. 특히, 웅변에 소질이 있어 학교 대표로도 여러번 나갔고 당진군 대표로도 대회에 나간 적도 두어번 있었다. 중학교때 제1회 상록문화제 중등부 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호서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여름 방학때 당진에 나와서 과외를 하라’는 선생님의 무서운 말씀에 그날부로 자퇴원서를 제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생님은 지금도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다. 선생님이 리본에 ‘난 자네를 믿네’라고 써서 선거사무실로 화분을 보내주셨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삶의 중심이 되는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다. 어느 순간 내린 정답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었다. 사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기에 한 집안의 가훈으로 삼기에는 좀 그렇지만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훈을 알아오라고 했을때도 나는 ‘우리 집 가훈은 홍익인간’이라며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줬던 기억이 있다. 서예를 하는 친구의 부인이 써준 ‘弘益人間’ 액자를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다.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이 아닌 행정공무원을 택했다. 이유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국방부(ROTC) 장학금을 받은 덕에 졸업 후 의무 복무기간인 2년 4개월에 3년을 더해 5년 4개월을 근무하고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4개월 전에 나도 모르는 사이 결핵에 걸렸었던 사실을 모 기관 입사 신체검사에서 알게 됐다. 경찰로 갈 경우 신체검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다른 동기들보다 뒤늦게 경찰로 가기보다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가서 고향을 위해 일하는 것이 더 보람 있다고 생각했다. 총무처 7급 공채와 충청남도 7급 공채에 동시에 합격했지만 나는 기꺼이 당진 발령을 지원했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오랜 공무원 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기억이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당진시청 근무 기간은 27년 4개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당진항 지정이다. 김덕주 전 시의회 의장님과 해양수산부를 수십번도 넘게 방문했고 당진시민들과 함께 해양수산부 앞에서 집회를 한 것도 수차례였다. 공무원 신분임에도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직접 연설하며 집회를 독려했고, 행정안전부 앞에서 집회를 할 때는 아예 구호를 ‘상여소리’ 가락에 맞춰 선창하며 집회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덕분에 아직도 많은 당진시민들로부터 ‘상둣군’ 추억담을 듣곤한다.

당진시청 근무 당시 공무원으로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 하나를 꼽자면?

제일 보람이 있었던 것은 역시 당진항 지정이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문화체육과장 시절 기지시 줄다리기의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한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이지만 안본환 보존회장, 남광현 팀장 등과 함께 문화재청을 수없이 방문하고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고 그 초석을 마련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문화재청 담당사무관이 저녁자리에서 ‘기지시줄다리기유네스코위하여’라는 글자수에 맞춰 열 네잔의 소주를 한꺼번에 마시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에 술도 잘 못 마시면서 이를 악물고 마시고 기절하다시피 한 채로 집에 왔던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번 지방선거를 6~7개월여 남긴 시점에서 나는 시청에서 경제환경국장 3년을 마치고 의회사무국장으로 10개월째 근무하던 시점이었다. 사실 시청에서 4년 넘게 국장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후배들에게 눈치 보이는 일이라 그 전년도부터 도청 전출을 추진해왔는데 무산됐다. 그러던 중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여기저기서 출마권유가 잇따랐고, 나 스스로도 참모로서의 역할이 아닌 시장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의욕과 의지도 생겼다. 다른 후보들보다 조금 더 젊었고, 현직에 있었기 때문에 변화하는 행정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시장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본인의 정치적 성향에 더 가까운 국민의힘에 입당,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시장 선거가 아닌 도의원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국민의힘을 사랑하는 당원의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당진 당협의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 재선거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 당이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중요한 선거이다. 이길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큰 후보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제2선거구에 많은 연고를 가지고 있는 내게 출마권유가 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경선을 통해 당원들의 선택을 받은 만큼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소신은 무엇인가?

정당의 목적을 흔히 정권 쟁취에 있다고 하지만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행복에 두어야한다고 믿는다. 이념도 좋고 정치도 좋지만 국민을 불안하게하고 국민을 걱정하게 만드는 정치는 바른 정치가 아니다. 좋은 법과 조례를 만들고, 예산이 올바르게 쓰일수 있도록 하고, 행정이 올바르게 운영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나 도·시의원들이 할 일이다. 일을 잘해서 주민들을 편안하게하고 잘 살게 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려고 해야지, 일과 상관없이 물고 뜯어서 상대를 흠집내고 쓰러뜨려서 정권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정치다. 도의원이 되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오로지 일로써 평가받고 싶다.

자신의 강점과 단점을 뽑자면?

이번 선거와 관련해서 강점을 꼽는다면 다른 후보에 비해 풍부한 행정경험을 갖고 있고 지역을 구석구석 잘 안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27년 4개월간 당진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업무적으로도 많은 인연을 맺어왔고 그분들이 이번 선거에서 보이지않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단점이라면 ‘착하고 샌님같은 이미지’이다. 많은 분들이 공무원 이해선이 아닌 정치인 이해선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나중에 의정 활동과정에서 시민들은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당진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진에서 태어나 당진에서 자랐고, 대학교 시절과 군 생활을 마치고는 다시 고향에 와서 27년 4개월을 행정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당진을 사랑하고, 당진을 잘 알고, 일 머리를 알고, 일에 대한 열정 또한 둘째 가라면 서럽습니다. 도의원이 되더라도 변함없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함께 웃고 웃으면서 지역발전과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기호 2번 국민의힘 이해선을 꼭 선택해 주십시오.

» 이해선 예비후보자는

- 1965년 송산면 출생

- 송산초(50회), 호서중(9회) 졸업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졸업

- 육군 대위 전역(ROTC 25기)

- 전)당진시 송악읍장, 경제환경국장, 의회사무국장 등 역임

- 현)국민의힘 당진당협 수석부위원장, 충남도당 부위원장

- 현)충청남도 정책경제 특별보좌관

- 현)심훈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