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는 4월 2일 충남도의회 당진시 제2선거구(송악·송산·신평) 재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구본현, 국민의힘 이해선, 조국혁신당 한광희, 진보당 오윤희 예비후보가 출마해 경쟁한다. 이번 호에서는 오윤희 예비후보를 만나 출마의 변을 듣는다.

- 학창시절의 ‘오윤희’는 어떤 학생이었나

태어난 곳은 경기도 평택이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다가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갔다. 잠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5학년 때 천식 등 기관지 쪽이 심하게 아팠다. 그래서 가족들이 있는 시골인, 경남 창녕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냈다.

학창시절의 나는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순한 아이, 착한 아이’라고 불렸다. 심지어 사춘기조차 없었다. 지금 동창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황순원 작가의 소설 <소나기>에서 나오는 여자 주인공과 나를 닮았다고들 한다. 체육 시간은 항상 앉아만 있었던, 서울에서 온 아픈 아이였었다. 고등학교 때는 시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이과를 갔고,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학교 다닐 때 조용했던 학생이라고 하면 지금은 주변에서 다들 놀란다.

- 어렸을 때의 꿈이 있다면?

고등학교 때 일기장에 ‘바보가 되자’라고 써놓은 글귀를 봤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대신해서 어머니는 가게 없이 노점에서 야채 장사를 했다. 많이 쫓겨 다니기도 했다. 평생 돈 벌기 위해 아득바득 사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살지 말자고 ‘바보가 되자’고 써 놓았던 것 같다.

직업적으로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인천교대에 입학 원서를 넣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교대에 가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싶다. 아마 전교조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당진에 와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3년, 숲 체험 교사로 10년을 일했다. 선생님이라는 꿈 하나는 이루지 않았나 싶다.

- 정치에 입문한 데 있어서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학창시절은 사춘기 없이 조용하게 보냈다면, 대학은 달랐다. 대학 때의 학생회 활동이 나의 인생 첫 터닝포인트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특히 사회 변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민주노동당 창립 당시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처음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처음 했던 것이 기억난다. 주로 도시 생활했던 나에게 농사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20살 되기 전에는 집회를 TV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집회 현장을 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수원 남문에서 열리던 집회였는데, 그때 전투 경찰과 학생들이 부딪치는 것을 봤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반대하고 목소리를 낼 방법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순응한 삶에서 변화할 힘을 느끼는 계기였다.

-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응원봉’과 ‘마을회관’. 이번 윤석열 탄핵과 관련한 집회 현장에서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억눌린 두려움에 떨면서 살던 청년이자 여성이었다. 크게 보여지지 않았던 2030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주권자로 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은 주권자라고 하지만, 정작 주권자로서 살고 있지 못하다. 이들이 충분히 누리고 외치는 정치를 하고 싶다.

지난 총선 이후로 마을회관을 다니고 있는데, 마을회관에서 공동체가 살아 있는 것이 보기 좋다. 성격이 모질거나 둥근 사람, 장애가 있거나 없는 사람, 땅이 많거나 없는 사람 등 이곳에서는 같이 모여 한솥밥을 먹는다. 이처럼 같이 공동체를 이루는 정치가 하고 싶다.

- 당진에 오게 된 이유와 여기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 갔는지 그 과정은?

충청도 사람을 만나서 결혼 후에 대전과 청주, 보령 등으로 이사를 다녔다. 순전히 남편의 이직 때문이었다. 당진을 찾은 것은 2008년으로, 올해로 17년이 됐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도시다.

처음에 당진 왔을 때는 외로웠다. 그때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원장님이 권해 보육교사로 일했다. 3년을 마치고 좋은엄마모임을 하면서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좋은엄마모임(현 당진여성회)이 두 번째 인생 터닝포인트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엄마들이 세월호 이후에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내 아이를 키우려 모였다가 모두의 아이를 지키기 시작했다.

평화의 소녀상부터 무상교복 운동까지, 우리가 마음 먹고 움직이니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해낼 수 있다는 큰 힘을 받았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것 같다.

또 큰 애가 아토피가 심하다. 아토피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생태교육도 그 연장선으로 시작했다. 그 이후에 환경과 관련한 산폐장이나 소들섬 등이 지역이자 내 문제, 내 관심사가 됐다. 당진의 아름다운 것을 지키고 싶다.

- 진보당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진보당을 선택한 적은 없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면서 이어져온 삶이다. 정치적인 활동을 위한 게 아니다. 또 진보당은 직접 투표로 후보를 선택하게 돼 있다. 당원이 나를 선택해준 것이다.

- 그동안 여러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첫 시작은 무엇이었나.

지역 현안으로 보면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무상 교복이다. 故 이기정 할머니가 계신 인연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데 노력했고, 그 활동이 무상교복으로도 이어졌다. 그 후에 산폐장, 소들섬 철탑, 석문산단 대규모 축사, 나래학교 특수실무원 휴게시간 등 어울림여성회가 주도하거나 연대하는 일들을 해 왔다.

-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는?

지난해 총선 준비를 하면서 송악읍 본당리 마을회관을 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97세셨던 6.25참전 유공자 어르신을 만났다. 전쟁의 경험을 가지신 분들은 진보 정당을 어렵고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 나 역시 걱정됐다. 하지만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역사적 아픔의 시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 돌아오신 어르신께 감사와 존경스러움을 표했다. 그리고 같이 사진 한 장 찍었었다. 그때 어르신이 살면서 많은 정치인을 만났으나 사진을 남기자고 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최근에 어르신을 다시 한번 만났다. 나를 알아보실까 했는데, 그날 밤 어르신께 문자가 왔다. 1년 동안 나를 잊어본 적이 없다더라. 나는 단지, 어르신의 경험을 듣고 사진 한 장 남겼을 뿐이다. 멀리 있거나, 권위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이러한 분들 곁에 있는 정치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지금도 나를 김진숙 진보당 당진지역위원장으로 아시는 것이다. 종종 자매라고 알거나, 같은 사람인 줄 안다. 지금 대동다숲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입주민들이 김진숙 위원장이 나로 착각하고 대동다숲에 사는 줄 안다. 우리는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로 보일 수 있겠다고 하면서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 다른 후보에 비해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잘 듣고, 말 잘하고, 잘 웃고, 잘 우는 것’이다. 오늘도 인사하다가 울었다.

진보당이 오일장에서 짐을 들어드리는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짐을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다. 서민과 농민,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진보당의 강점이 아닌가 싶다.

같은 마을회관에서 후보자 4명이 발언을 하면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후보가 나다. 그 안에 나를 지지하는 분이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가 답답하고 화날 때 내가 속 시원하게 간지러운 부분을 긁으니 동의하면서 큰 박수를 보내주신다.

최근에 어떤 유권자는 선거법상 귀책 사유가 있는 당은 재·보궐 선거에 나오지 않도록 하는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내 말에 호응을 많이 해주신다. 잘 웃고, 잘 우는 건 삶의 고충에 대해 공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진심을 통하는 것이 나와 진보당의 강점이다.

- 당진 출신이 아닌 데다가, 여성으로서 또 소수당으로 선거에 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이 당선돼야 할 이유는?

나이는 어리고,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데다가 여성이다. 거기다 소수정당이기까지 하다. 최악의 조건은 다 가졌는데도 마을을 다니면 가장 크게 박수를 받는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다. 아마 양당 정치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답답하고 화도 날 것이다. 바뀌지 않는다고들 생각할 수도 있고, 찍어 봐야 소용없다고도 느낄 것이다. 그리고 1번이나 2번이 아니면 사표가 될 것이라고도 여긴다.

나는 양당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출마했다. 내가 당선되는 것은 변화 가능성의 희망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그게 내 책무라고 생각한다.

-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단일화를 하며 한발 물러났다. 그때의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출마선언서에 윤석열 정권의 심판이 우리 대다수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출마했고, 그 방법이 절실했다. 그래서 진보당이 양보했고 내가 결단을 내렸다. 압도적인 야권의 힘이 필요했기에 후보에서 사퇴했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아낸 잘한 결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야욕이나 욕심이 있었다면 끝까지 선거에 임하면서 이름을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배지를 달아보기 위한 정치가 아니었기에 당시에 후보자에서 사퇴했다.

- 이번에는 끝까지 완주할 계획으로 안다. 완주에 대한 각오는?

이번 선거 운동 때 피켓에 ‘내란 세력 청산, 당진부터 새롭게’라는 문구를 적었다. 비상계엄으로 우리나라가 두쪽이 났다. 양당 체제의 한계가 비극을 낳은 것이다. 이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이 정치를 망가트리고 국민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내란을 일으킨 정당이, 심지어 선거법 위반으로 재선거를 치르게 했는데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다. 이를 심판하고, 바뀌기 위해 끝까지 이번 선거에 임하겠다.

- 오 후보가 바라보는 당진은 어떤지 궁금하다.

생태 수업을 하면서 당진에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당진이 잘 지켜지고, 공동체가 굳건히 지켜지길 바란다. 산과 들, 바다와 환경을 지키면서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 그리고 공동체가 유지되는 일이 조화로웠으면 한다. 지금은 한쪽으로 치우 져진 것만 같다.

오성환 시장의 슬로건이 ‘함께 여는 미래, 생동하는 당진’이다. 여기서 함께 여는 것은 여성과 노동자, 농민이 포함돼야 하고, 생동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생동이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당진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 달라. 유권자들에게 사표 심리가 있다. ‘내가 찍어봤자 당선 안 되지, 될 사람을 뽑아야지’ 혹은 아예 투표도 안 하는 분들이 있다. 이건 포기다. 진보당 오윤희에게 표를 줘라. 변화의 시작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

>> 오윤희 예비후보는?

- 1977년 경기도 평택 출생

- 경기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 전)22대 총선 진보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 전)소들섬송전탑지중화를위한특별위원회 위원

- 현)스마트축산복합단지반대를위한당진시민대책위 위원장

- 현)죽음의급식실문제해결을위한원탁회의 상임대표

- 현)당진어울림여성회 회장

- 현)윤석열퇴진당진운동본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