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저수지 중 하나인 합덕제(合德堤)는 고려시대에 처음 축조됐다. 이후 조선시대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데,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농업을 지탱해 온 중요한 수리시설이었다. 조선시대의 3대 방죽이라고도 알려진 합덕제에는 7월과 8월이 되면 싱그러운 초록 연잎 위에 고고한 연꽃으로 가득 차 장관을 이룬다.

우리의 것인 합덕제를 관광객과 더 많은 시민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합떡이다. 우리 지역에서 난 해나루쌀과 합덕제에서 딴 연잎을 가루로 내 만든 떡으로, 맛도 건강도 좋다. 이 합떡을 가지고 문화유산활동가들이 모여 관광객, 시민을 대상으로 체험을 열고 있다. 또한 합떡 외에도 다양한 ‘우리의 것’을 만들어 알려 나가고 있다.

문화유산활동가들의 뜨거운 학구열

매주 금요일, 합덕수리민속박물관로 문화유산활동가들이 모인다. 문화유산활동가란,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문화재 해설과 체험프로그램 운영, 전통문화 전승, 관광 안내 등의 활동을 한다.

당진시와 문화유산연구소 이음(대표 장영란)이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3년 차로, 현재 30여 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많은 관심에 기준 인원인 30명이 넘는 신청이 따랐고, 지금도 매주 수업이 있을 때면 90% 넘게 출석할 정도로 수업에 대한 학구열이 뜨겁다.

문화유산활동가들은 모두가 지역의 애착을 가지고 알리고 싶은 이들이다. 우리 지역에 문화 유산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알리는 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화유산활동가다.

합덕의 연꽃과 해나루쌀이 더해져 만들어진 합떡
합덕의 연꽃과 해나루쌀이 더해져 만들어진 합떡

“우리 문화 유산 알리는 일, 뜻깊어”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 2016년 합덕 하흑리에 둥지를 튼 김막내 씨는, 우연히 인터넷을 보고 문화유산활동가 모집 안내를 친구와 함께 보고 신청하게 됐단다.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최근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마친 후 치료 과정 중에 있지만, 수업이나 체험이 있는 날에는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는 “암 선고 받은 날에도 수업에 왔다”며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수업을 받는 것도 즐겁다”고 말했다.

합덕에서 임상병리사로 일을 하고, 최근 퇴직한 김미연 씨도 이 활동이 뜻깊다고 말한다. 그는 “시 공부를 좋아해 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을 듣는데, 강사님이 추천해줘서 올해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그동안 임상병리사로 이과 분야에서 일했는데, 우리 지역의 문화 유산에 대해 배우면서 눈이 번쩍 트이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해나루쌀로 만든 합떡. 떡 위에 견과류를 올리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도 쉽게 체험할 수 있다.
해나루쌀로 만든 합떡. 떡 위에 견과류를 올리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도 쉽게 체험할 수 있다.

“떡 안 좋아해도 합떡은 먹어요”

“합덕제를 옆에 둔 합덕 주민들은 연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라요. 그래서 연을 활용한 수업이나 먹거리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수업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여러 축제나 행사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찾아가는 수업도 해요.”(장영란 대표)

지난 26일, 정규 수업이 아닌데도 체험 실습을 위해 모여달라는 말에 문화유산활동가들이 모였다. 이날 만든 것은 합떡과 연잎밥이었다. 합떡을 만들어 내기까지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합덕제의 연잎 가루를 넣은 연in쿠키, 연in파이, 연in머핀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좀 더 우리 것을 추가하고 싶은 활동가들은 당진의 특산품인 해나루쌀을 사용해 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떡에 연잎 가루만 넣으니 맛이 없어 쑥을 넣고, 알록달록한 색감을 위해 비트 가루도 현재 사용하고 있다.

이 합떡을 가지고 문화유산활동가들이 관광객, 시민들을 만났다. 프로그램의 대상은 누구나 가능했다. 떡을 안 좋아하는 아이부터, 성인까지 참여 대상이 넓었다. 아이들은 활동가들이 만들어 준 떡 위에 다양한 틀을 찍기도 하고, 그 위에 콩이나 건포도 등 견과류로 장식한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작품이 만들어지는 때다. 어른들 역시 전통 문양으로 틀을 찍어 만드는 합떡 만들기 프로그램에 높은 호응을 보내고 있다고.

합덕제의 연잎과 지역에서 난 견과류, 쌀로 만든 연잎밥
합덕제의 연잎과 지역에서 난 견과류, 쌀로 만든 연잎밥

천안에는 호두과자 있는데 당진은?

문화유산활동가들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연잎밥과 덖은 주먹밥, 고추장 등 다양하게 머리를 맞대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연잎밥에 찬을 가지런히 올린 한상차림도 준비하고 있다.

연잎밥은 직접 합덕제에서 딴 연잎을 그대로 만든 밥이다. 연잎이 자라는 7~8월이 되면, 이른 새벽 5~6시에 나가 연잎을 채취한다. 한참을 채취한 뒤에 깨끗하게 씻어 1년 치 사용할 양을 냉동으로 저장한 뒤에 사용하고 있다.

합덕의 연잎이 들어간 연잎밥에는 정성까지도 담겼다. 연의 씨앗인 연자육과 지역에서 난 서리태, 말린 연근, 견과류 등이 들어간다. 연잎밥 만들기 체험 역시 호응이 좋다. 정해진 밥을 틀에 담아 넣고, 자기가 넣고 싶은 견과류를 올린 뒤 예쁘게 연을 덮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먹지 못하는 연잎밥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어 반응 좋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연잎밥과 정갈한 반찬으로 만든 한상 차림
연잎밥과 정갈한 반찬으로 만든 한상 차림

장영란 대표는 “경주에는 십원빵, 천안에는 호두과자가 있는데 우리 지역에는 면천의 콩국수가 있어도 계절이나 지역적으로 한정적이라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먹거리에 놀거리가 더해지면 더 반응이 좋을 것이라 생각해 고민 끝에 우리들만의 것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이어 “당진 시민만이 아니라 인근 천안, 예산, 홍성 등에서도 프로그램 하나만을 보고 오시는 분도 있고, 최근 합덕역이 개통된 이후에는 평택이나 경기도에서 온 분들이 많다”며 “그냥 합덕제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 것보다,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합덕제 이야기를 들을 때의 참여자 관심도가 다르다”고 전했다.

이제는 당진 전 지역으로!

한편, 처음에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을 중심으로 했던 프로그램을 이제는 문화유산활동가들이 양성되면서 더 넓혀 나갈 예정이다. 다음 달 4일부터 6일에 있을 ‘면천의 봄, 또 봄 면천’ 축제에도 체험 부스가 설치된다.

연암 박지원은 경상도 안의현감 시절, 서울에 있는 자식에게 보낸 편지에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보낸 고추장의 맛이 좋은지 어떤지 말해주면 계속 보내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은 손수 고추장을 담을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고 한다. 여기서 착안해, 면천에서 군수로 지낸 연암 박지원을 연결시켜 이번 면천의 봄, 또봄 면천에서 고추장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 대표는 “앞으로도 우리의 것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지역 특색에 맞게 더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