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부터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은골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희생자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다.
발굴 결과 현재까지 90구의 유해가 확인되었다. 발굴된 유해는 층층이 쌓여 있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고 모두 팔을 뒤로 한 채 엎어져 있었다. 이는 희생 당시 팔을 뒤로 묶인 채 학살되어 내던져진 뒤 층층이 쌓여 묻힌 것임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극히 일부의 발굴이었지만 희생의 규모가 매우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유해와 함께 M1 소총 탄피와 30센티 크기의 창이 발굴되었다.
모두 학살하는데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류로 학살자가 누구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증거물이다. 놀라운 일은 나무를 끼워 사람을 찔러 죽이는데 사용했을 것이 분명한 창이었다. 이는 총알이 아깝다고 창으로 찔러 죽였다는 유족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유물이었다.
필자가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발굴 현장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창이 발굴된 것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당진 은골에서 벌어진 학살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생해 3년간 지속되었던 한국민족의부끄러운 과거사이다.
특히 전쟁 기간 수많은 인명이 아깝게도 목숨을 빼앗겼는데 그중에는 민간인 희생자가 250만 명이나 되었다. 이들 민간인 희생자 중에는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도 적지 않았는데 이는 이승만 정부의 국가폭력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당진 은골에서 발굴된 유해는 이승만 정부의 무자비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였다.
한국전쟁기에 당진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3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고, 당시 당진군의 모든 면에서 빠짐없이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당진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두 번에 걸쳐벌어졌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생하자 예비검속을 통해 구금했던 보도연맹 회원을 7월 12일 전후해서 학살했던 사건과 9.28 수복 이후 1950년 10월 초순 집중적으로 자행된 부역혐의자 학살이 그것이다.
학살당한 보도연맹원은 아무 이유도 없이 과거 활동 경력만을 문제삼아 불법적으로 체포 구금한 후 학살한 것이었고, 부역 혐의자는 인민군 점령시기 3개월 사이 적대세력에 협력했다는 혐의만으로 정당한 재판에 의하지 않고 무조건 학살했다는 점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이 분명하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억울한 죽음으로 수많은 유족은 슬픔을 위로 받기는커녕 빨갱이 자식이라는 질시와 혐오 속에 75년을 살았다. 어린나이에 가장이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남들처럼 배울 수도 없었고, 성년이 되어서는 연좌제로 하고 싶은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유족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3기에 걸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하고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조사 결과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했다.
법원은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을 바탕으로 재판을 통해 부족하나마 억울하게 죽은 민간인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해 주었다. 이런 정부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은 분명 많은 유족의 한을 달래는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될 수는 없었다.
정부와 유족이 아픈 과거사를 정리하려는 뜻은 진실규명을 통해 화해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앞으로 나가자는 데에 있다.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해자인 정부가 반성하고 사과하여 희생자를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 당진 은골 민간인 희생자 학살지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해 진실을 알리고 다시는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뿐 아니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웠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