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행담도는 주민의 삶과 공동체가 살아 숨 쉬던 터전이었으나, 서해대교 건설 이후 개발 논리에 밀려 그 역사가 점차 잊힌 공간이다. 당진시대가 행담도의 생활사를 추적하며 지역민조차 알지 못했던 섬사람들의 100년 역사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행담도에 보존 가치가 있는 세부 공간을 시민과 함께 발굴하고, 이를 콘텐츠로 완성할 예정이다. 개발로 의미를 잃어버렸던 행담도의 공간을 ‘역사를 품은 제3의 공간’으로 재창조하고 다시 시작된 행담도의 개발과정에 공간의 가치가 배제되지 않도록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예정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행담도에서 발견된 생흔화석
행담도에서 발견된 생흔화석

‘생흔화석’

고생물의 행동 흔적을 보존한 화석으로, 발자국이나 굴, 배설물 등이 포함된다. 생물의 신체 구조가 아닌 그 시대의 생활 방식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쉽게 말해서 뼈나 피부 같은 몸체가 아니라 나머지 모든 것이 생흔화석이 영역이 된다. 생물의 몸체가 직접 남은 화석에서는 알기 어려웠던 생물의 생활상 자체를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인 의의가 있다.

이러한 생흔화석이 발에 채던 곳이 행담도였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거나 굴을 캘 때 흔히 보던 것이 생흔화석이었다. 마치 나무뿌리 같으면서도 돌 같은 생흔화석은 그 크기, 모양, 강도가 모두 달랐다. 밀물과 썰물로 인해 갯벌 밖으로 노출된 생흔화석은 쉽게 부러졌고, 깊숙이 묻혀 있었던 것은 밟아도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굴이 붙어 있던 것도 있었고, 표면이 매끄러운 것도 있었다.

생흔화석이 자주 발견됐던 지메바위
생흔화석이 자주 발견됐던 지메바위

“나무 뿌리 같았던 화석”

쉽게 볼 수 있었던 만큼 이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많다. 특히 바닷일을 했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것이 생흔화석이었다. 행담도 주민 한정만 씨의 기억에도 생흔화석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는 “나무 뿌리처럼 생긴 돌멩이 같았다”며 “하지만 돌처럼 무겁지는 않았고, 마치 흙으로 뭉친 것처럼 가벼웠다”고 말했다.

“낙지 잡으러 갈 때 흙 파내면 생흔화석이 엄청나게 나왔어요. 특히 지메바위 맞은편과 퉁수바위 밑에 생흔화석이 많았는데, 꼭 두 곳이 아니더라도 행담도 전역에 흔했어요. 통나무처럼 두꺼운 것도 있고 얇은 나뭇가지 모양의 생흔화석도 있었어요. 또 쉽게 부러지는 생흔화석이 있었는데, 단면을 보면 안과 겉의 색이 달랐어요. 안의 색은 진하고 점점 옅어져 겉은 흙과 같은 색이었던 기억이 나요.”

흔한 데다가 다른 화석과 다른 생김새라 주민들은 당시에는 그것이 화석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행담도 주민 김미정 씨는 “바닷가에서 굴 딸 때 생흔화석을 보고 마치 나무가 썩은 것인 줄만 알았다”며 “밟아도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것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퉁수바위 인근에서도 생흔화석이 많이 발견됐다.
퉁수바위 인근에서도 생흔화석이 많이 발견됐다.

전시관 약속은 어디로 갔나

행담도의 작은 섬은 현재 전국 휴게소 중에서도 유명한 ‘행담도 휴게소’가 됐다. 개발 논리로 인해 주민들은 고향과 터전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생흔화석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도록 자신이 묻혀 있었던 행담도 앞 바다에서 건져졌다. 무려 35만 점에 이른다.

행담도 갯벌이 매립될 당시, 당진시는 행담도개발주식회사와 하나의 약속을 하게 된다. 학술 가치가 높은 생흔화석을 포함해 행담도를 기억할 수 있는 전시관과 홍보관을 설치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매립은 됐어도, 전시관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생흔화석은 어디로 갔을까. 안타깝게도 행담도 휴게소 뒤편, 관리되지 않은 우거진 풀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진 콘테이너에 안에 방치돼 있었다. 그 현장을 최근 윤명수 당진시의원이 찾았다. 생흔화석이 있는 콘테이너의 문을 열기까지도 사실상 쉽지 않았다.

행담도 휴게소 뒤편 컨테이너에 20여 년 동안 생흔화석이 보관돼 있다.
행담도 휴게소 뒤편 컨테이너에 20여 년 동안 생흔화석이 보관돼 있다.
곰팡이로 가득 찬 생흔화석이 보관된 컨테이너
곰팡이로 가득 찬 생흔화석이 보관된 컨테이너

보관 컨테이너 문 열자 발이 푹

생흔화석을 수소문한 끝에 그 관리의 소관이 한국도로공사라는 것을 파악한 윤명수 시의원은 당진지사를 방문한다. 하지만 당진지사에서는 “본사 소관”이라는 말로 넘겼고, 본사의 담당자와 연결하니 “(관리는) 행담도개발주식회사에 넘겼다”고 또 책임을 피했다.

어렵게 현장 방문 약속을 잡고 생흔화석이 있는 컨테이너에 들어선 순간부터 열악한 환경임을 알 수 있었다고. 윤명수 의원은 “함께 간 고대영 학예사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딛었는데, 바로 바닥이 부서졌다”며 “그리고 천장은 곰팡이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생흔화석은 비닐에 쌓여, 그리고 플라스틱 통에 담겨 숫자로 매겨진 채 20년 전 그 상태 그대로 놓여 있었다. 윤 의원은 “보관된 것은 확인했으나 생흔화석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생흔화석의 모습
최근 생흔화석의 모습

“멋대로 방치한 생흔화석”

최근의 생흔화석의 모습을 본 주민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한정만 씨는 “바다와 갯벌에 있던 생흔화석이 바람 하나 통하지 않은 비닐과 플라스틱에 쌓여 있다면 과연 온전하겠느냐”며 “삭은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그냥 갯벌 속에 묻혀 있는게 나았다”고 말했다. “생흔화석을 채집하고 멋대로 방치했어요. 마치 처치 곤란인 식으로 쌓아 놓은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이나 당사자나 모두가 잘못한 것에요. 한국도로공사도, 당진시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