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행담도는 주민의 삶과 공동체가 살아 숨 쉬던 터전이었으나, 서해대교 건설 이후 개발 논리에 밀려 그 역사가 점차 잊힌 공간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개발로 행담 잃었던 행담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재조명하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행담도는 이제 섬이 아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한가운데, 하루에도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행담도 휴게소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이곳은 본래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던 삶의 터전이었다. 아이들이 뛰놀던 학교가 있었고, 이들을 지켜주던 경찰초소도 있었다.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캐고 굴을 따며 생계를 이어갔다. 육지와는 다른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섬사람들은 서로 기대며 삶을 꾸려 나갔다. 그 흔적 가운데 오늘은 ‘우물’ 이야기를 꺼내본다.
섬에서 만난 생명의 젖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가장 귀한 것은 다름 아닌 ‘민물’이었다. 행담도에는 깊은 우물이 두 개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있었던 첫 번째 우물은 당산 아래에 자리했다. 주민 이은주 씨는 “깊이가 10m정도는 됐다”고 기억한다. 주민들은 두레박에 줄을 매달아 우물에 드리운 뒤, 몇 번이나 줄을 당겨야 물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물은 물통에 담아 물지게로 이고, 고단한 걸음을 옮겨 집으로 날라야 했다.
그러나 가뭄이라도 닥치면 물은 더 귀해졌다. 한 바가지를 얻기 위해 몇 번이고 두레박질을 해야 했고, 새벽녘 서둘러야 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불편을 덜고자 주민들은 고개 너머에 우물을 하나 더 팠다. 이곳은 다행히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았고, 수량도 풍부했다. 주민들은 두 우물을 이용해 식수부터 빨래와 샤워에도 이용했다.

여성들의 고된 발자취
행담도의 우물은 특히 여성들의 삶과 깊이 연결돼 있다. 살림을 도맡았던 여성들은 무거운 물지게를 지고 우물을 오갔다. 10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이부터 행담도를 떠나기 전인 19살 때까지 우물물을 펐다는 한태연 씨는 “집에서 펌프가 있었지만, 짠기가 있어 빨래를 하면 옷이 뻣뻣해졌다”며 “그래서 어려워도 우물을 다니며 물을 길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물 물을 기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면서 집안일을 도왔다. 부모가 바다에 나가 생업을 이어가는 동안, 어린 아이들은 살림을 배우거나 갯벌에 나가 조개와 굴을 캐며 가족을 거들었다.
우물길은 때로 아픔의 길이기도 했다. 무거운 지게에 어깨가 짓눌리고, 발걸음이 헛디뎌 무릎이 까지는 일도 흔했다. 더 큰 비극도 있었다. 마을의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고, 돌을 쌓아 우물을 만들다 무거운 돌에 깔려 평생 불편한 몸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주민도 있었다.
우물은 단순히 물을 얻는 장소에 그치지 않았다. 빨래를 하고, 쌀을 씻고,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여성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씻는 동은 혹여라도 누가 볼까 싶어 깜깜한 밤에 불빛도 켜지 않았다고. 한태연 씨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오지말라’고 외쳤다”며 “불빛 없이 옷을 적셔가면서 씻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우물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뱀
한편, 행담도는 ‘뱀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독사와 능구렁이가 특히 많았다고. 비가 오고 난 뒤 육지에서 밀려온 쓰레기 사이사이에도 물뱀이 섞여 있었고, 길을 가다가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뱀이었다. 뱀에 물려 꽤 큰일을 치른 주민도 있었다.
이 뱀은 우물가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뱀이 직접 나타나기도 했지만, 허물을 벗어놓기도 했단다. 이은주 씨는 “뱀 허물이나 뱀이 있으면 돌로 만든 우물의 벽을 짚고 내려가 꺼내야 했다”고 말했다. 물론 뱀만이 아니더라도, 두레박이 빠지거나 하면 같은 방식으로 깊은 우물로 들어갔던 일화가 있다.

“섬 사람들 물 인심이 야박하네”
물이 귀한 섬에서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관광객들이 “행담도는 물에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한태연 씨는 “관광객들이 바닷가에서 놀고 난 뒤, 주민 집 마당에 있는 지하수 펌프에서 씻고 가기도 했다”며 “그러면 정작 주민들이 마실 물조차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주민들은 낮에 펌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대기 같은 것을 빼놨다”며 “이것을 보고 관광객들이 ‘행담도 주민들의 물 인심이 사납다’고들 말했다”고 덧붙였다. 외부인에게는 야박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주민들에게 물은 생존의 문제였다.

개발과 함께 사라진 우물
우물에 대한 추억은 행담도 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행담도에 레미콘 회사가 들어서면서 우물은 주위에는 시멘트 분진이 날렸고, 수질은 오염됐다. “물이 예전처럼 달지 않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며 “물을 마신 주민 중 건강이 나빠진 사람도 있었다”는 행담도 주민 임은순 씨의 증언은, 개발이 남긴 상처를 보여준다. 결국 우물은 메워졌고, 그 위로 고속도로와 터널이 놓였다.
오늘 행담도를 찾는 이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갈 뿐, 이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주민들의 기억 속 우물과 그 동네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태연 씨는 “그때는 우물이 깊고 무섭게만 느껴졌지만, 지금 다시 우물을 본다면 새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주 씨 역시 우물 이야기를 마치며 “살았던 주민으로서 옛 흔적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담도의 우물은 단순히 물줄기가 아니었따. 삶을 이어주던 생명수였고, 공동체의 중심이었으며, 고단했던 여성들의 땀과 아이들의 웃음이 서린 공간이었다. 비록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주민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