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17일 새벽, 밀려오는 빗물에 지난해의 폭우 피해 트라우마가 또다시 시장 상인들을 덮쳤다. 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상인들은 미리 들이닥칠 물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고, 물건을 옮겼지만, 하늘에 구멍 난 듯 퍼붓는 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진시장이 물에 잠긴지 1년 만에 다시 침수 피해가 반복됐다. 한 번도 아닌 해를 거듭해 발생한 피해에 상인들의 상심이 깊다 못해, 평생의 생계 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고민의 기로까지도 놓였다.

당진 전 지역에 피해를 남긴 비가 사그라들고 폭염이 찾아왔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은 고요했다. 하지만 수마가 휩쓴 지역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장 곳곳 상점은 복구로 문을 닫았고, 비에 젖은 식기와 가구 그리고 판매대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상점 앞에 노상에 버려져 있었다.
생선 썩어 악취로 가득찬 어시장
어시장 근처에 다다르자 생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피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악취가 심했다. 지난 21일, 폭우 피해가 발생하고 4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시장은 단전과 단수로 복구 작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난해에는 지하실까지 물이 잠기지 않았지만, 올해는 지하실까지 잠기며 어시장을 관할하는 모든 기계가 멈췄다. 전기가 끊기고 물이 중단되면서 냉장고는 멈췄고 그 안에 있던 생선들은 폐기 상태에 이르렀다. 또한 밀려 오는 물에 냉동고 등의 기계가 잠기면서 막대한 피해가 가중됐다. 어시장 뒤편의 거대한 냉동 창고도 물이 밀려 들어오면서 보관된 생선 등 물건은 모두 폐기해야 하는 상태다.
“생선 500짝 다 버렸어요”
이번 비 피해로 버린 생선류만 2억 원에 다다른다는 당진수산의 손한동 대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냉동창고 9개를 보유하고 있는 당진수산은 이번 침수로 인해 보관 중인 물건들을 모두 버려야만 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준비해 놓은 꽃게, 조기, 갈치 등 고단가 품목이 주류라 더더욱 피해가 막대하다.

손 대표는 “물건 500여 짝을 버렸는데, 이 규모만 1억9000만 원에서 2억 원가량”이라며 “집기나 기계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폭우가 내릴 때 손 대표는 어시장 현장에 있었다. 새벽 1시간 30분을 지나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서 30여 분 만에 빗물이 어시장 안으로 밀려 들어와 막을 수 없었다고.
심지어 고압전선이 있는 지하실까지 침수되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바로 119 신고에 나섰다. 그는 “현재 기계실에 전기 차단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지난해부터 당진시에 설치를 요구해 왔다”며 “하지만 설치가 되지 않았고, 만약 누전까지 발생하면 근방 주민까지 감전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어렵게 119로 연락한 끝에 차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수해가 나기 전에 상인회에서 자체적으로 대피 훈련과 홍수 피해 매뉴얼 연습을 했어요.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는 해결할 수 없었어요. 펌프장이라도 있었다면, 피해가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영업 손실까지 2차 피해 막중
한편, 단전과 단수로 인해 복구 작업도 늦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21일에 임시 전기를 가져 와 그 피해 상황만 어렴풋이 확인했을 뿐이었다. 제습을 해야 물기를 없앨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사용하지 못해 상인과 봉사자들이 일일이 짐을 나르고, 걸레와 휴지로 물건들을 닦는 등의 작업만 가능했다.
수해 피해에 영업 손실까지 2차 피해도 막중하다. 빠르게 복구해 장사를 시작한 곳도 있지만, 복구 작업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손님의 발길마저 끊겨 생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전기 끊긴 어시장
에어컨조차 작동되지 않아 덥고 습한 곳에서 상인들은 조금이라도 복구하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물에 잠겼던 기계들이 작동되지 않아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아 있는 금고 등 집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있던 명성종합상사의 인성진 대표(어시장상인회장)는 “다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 있냐”며 “내년이 아니라, 올해 태풍이라도 오면 시장 사람들은 이런 피해를 겪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보상에 대한 부분 역시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는 피해 규모와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300만 원이 지원됐다”며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전통시장 화재보험을 가입했지만, 화재 시에만 보상받을 수 있어 상인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 화재보험에는 누수가 발생하거나 재해로 유리창이 깨져도 보상이 되는데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진흥공단에서는 이런 기준을 만들어서 상인들에게 도움 주지 못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해마다 잠기는 시장, 대책은 어디로 갔나”
“복날 준비한 닭도 다 버렸어요”…침수로 상인들 생계 막막
‘행사처럼’ 반복되는 당진시장 물난리, “장사 접어야 하나”
“좁고 얕은 당진천, 이대로라면 또 넘칠 수 있어”
한 자리에서 1998년,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세 번의 피해를 받은 대성닭집의 박종전 대표 역시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그는 “물에 물건이 다 쓸려 내려갔다”며 “물에 잠긴 냉장고는 일단 수리한 다음, 고쳐지지 않으면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번이나 겪은 문제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이제 폭우 피해가 ‘행사’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고 말했다.

“복날을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창고에 닭을 준비해 놨었어요. 하지만 비 피해로 인해 다 버릴 수밖에 없었죠.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 더 답답합니다.”
가게부터 집까지 모두 침수
어시장만이 아닌, 당진시장 전체에 대한 피해가 크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 역시 당진천이 역류하면서 집이 침수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당진청과의 오영자 대표는 상점은 물론 당진천 인근에 있는 거주지까지 침수됐다. 그는 “빗물이 들어올 때 청과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 가게에 나와 있다가 집까지 물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바로 집으로 갔다”며 “아침에 와서 보니 물에 젖은 박스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저온창고와 냉동고까지 침수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결국 당진청과는 박스만 젖은 과일은 저렴한 값에 팔고, 그 외에 물 먹은 과일들은 모두 폐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오 대표는 “과일 피해만 몇 천에 이르고 기계는 현재 수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집도 바닥까지 물이 찼는데, 가게 복구를 우선으로 하느라 손을 댈 수 없어 친정 가족들이 도움주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매년 시장 침수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데 과연 당진시가 대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이은 침수에 ‘트라우마’ 호소까지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니 불안해요. 앞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서 더 자주 그리고 세게 폭우가 올 수 있잖아요. 그러면 저희는 생활권이 아예 무너지는 거죠.”
46년째 당진침구사를 운영하는 최승묵·한매자 대표도 지금까지 세 번의 침수 피해를 겪었다. 1억 원을 들여 가게에 놓았던 침구류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그는 “대략적으로 파악한 피해액만 3000~4000만 원에 이른다”며 “흙탕물에 아예 젖은 이불은 버렸고, 사용 가능한 이불은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빨래한 뒤 시설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을 겪으니 기운이 빠져 더 이상 장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50여 년 동안 시장 내 건물 2층에서 거주한 성원모 씨는 “지하실은 물론 거리에 물이 차서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며 “비가 올 때 밖을 보니 시장에서 나온 온갖 박스 등 쓰레기가 가득 떠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피해 규모가 전체적으로 커서 자원봉사자 수급 등 복구도 늦고 있다”고 말했다.

“물 찬 것도 모르고 자는 사람도 있어”
지난해도 피해가 발생했으나 별다른 예방책 없이 또 다시 불거진 문제에 상인들은 분노했다. 지금이라도 예방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번 침수 피해로 인해 당진시가 추진하는 호수공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침수 피해와 호수공원 조성 사업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직접 피해를 겪은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양석 읍내11통장은 “비가 오는 날 당진천 인근 저지대에 사는 주거지에 갔더니, 집으로 빗물이 차는 것도 모른 채 잠을 자고 있는 주민들도 있었다”며 “자칫하면 큰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성과 관리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호수공원 사업이 우선이 아니라 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사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진천 정비가 우선적”
김수영 읍내11통 노인회장은 “지금의 당진천은 좁고 얕아서 폭우가 내리면 감당하지 못한다”며 “물이 좀 더 흐를 수 있도록 하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민 김종모 씨 역시 “침수가 심각한 지역(조약국, 어시장, 성결교회 옆)에 간이 배수 시설이라도 만들었다면 피해가 이렇게 크진 않았을 것”이라며 “지자체의 예산이 한정적이라면, 꼭 필요한 곳부터 예산을 사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제의 당진전통시장상인회장은 “지난해는 무릎 정도까지 물이 찼다면 올해는 허리까지 물이 올라온 곳도 있었다”며 “피해가 큰 탓에 복구 작업도 오래 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침수로 손해 나 본 사람만이 이 고충을 알 것”이라며 “침수 피해 예방을 위해 장기적, 단기적인 두 가지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제는 여야가 한 목소리 내야 할 때”
원로인 이홍근 당진1동 읍내1통 노인회장(전 충남도의원)은 “저지대인 원도심은 폭우가 내리면 항상 비 피해를 입던 곳”이라며 “1998년 큰 홍수 피해를 입고 450억 원을 들여 하천 정비와 배수 펌프장을 설치한 이후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이번 폭우 피해 역시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회장은 “피해가 반복되는 탑동초와 당진정보고 인근에 펌프장 설치 및 저류지 조성 등을 고민해야 한다”며 “또한 당진시장과 인근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당진천의 하상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앞으로 당진시 인구가 20만 명을 넘게 될텐데 당진천과 시곡천 등의 하천 정비를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홍수 피해 대책만 세우지 말고, 여야가 힘을 합쳐 문제를 풀어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