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충남지역 풀뿌리지역언론사 연대모임인 충남지역언론연합이 충남 시군 여행지를 회원사별로 월 1회 소개합니다. 이 달은 <서산시대>가 추천하는 ‘머물고 싶은 해미’ 이야기입니다.

충남 서산 해미면은 도시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기에 좋은 곳이다. 수천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 마을에는 관광지 특유의 인위적인 장식 대신,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남아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목적 없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간이다.
600년 세월을 품은 해미읍성
600년의 세월을 품은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온전히 남아 있는 평성이다. 잔디밭과 두툼한 성벽, 그리고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방문객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늦추게 한다.
성안에는 전통 주막이 자리하고, 성문 근처에는 줄을 서야 겨우 맛볼 수 있는 호떡집도 있다. 한 그릇의 칼국수, 한 잔의 막걸리에도 이 마을의 시간이 스며 있다. 관광객을 위한 과장된 연출이 아니라, 주민의 일상과 여행자의 여정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국내 유일의 ‘해미국제성지’
해미읍성에서 남쪽으로 도보 15분. 조용한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해미국제성지가 나타난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이후, 2021년 교황청에 의해 국내 유일의 단일 국제성지로 선포된 이곳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한국 근대사 속 신앙 박해의 비극과 인간 존엄의 이야기를 품은 장소다.
19세기 병인박해 당시, 해미읍성에서 끌려온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이름 없이 순교했다. 돌다리 위에서 맞거나, 생매장됐으며, 그들의 삶은 대부분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
이들을 기리는 무명 순교자 묘역, 순교자탑, 700석 규모의 대성당, 그리고 교황이 실제로 사용했던 의자와 차량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역사체험관이 개관했고, 순례자 방문센터 건립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성지가 전하는 진정한 울림은 시설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기억과 기도의 순간에 있다. 무언가를 ‘보러’ 가는 공간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돌아보며, 조용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관광보다는 순례, 체험보다는 사색, 소비보다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곳.

이것이 해미의 진짜 매력이다.
물론 숙박 인프라나 교통 접근성은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 하지만 해미를 찾는 이유는 단지 물리적으로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역성과 역사성, 종교성과 인간성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겹쳐 있는 이 마을의 결은, 오히려 그 불편함 속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해미는 머물고 싶은 서산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서산시대 김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