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 전 송악읍 고대2리는 굴을 따고 바지락을 캐며 살아가는 어촌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30만 평 규모의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고, 자연 그대로의 바다에서 낙지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다.
지금 그 자리에는 현대제철과 동부제철의 굴뚝이 솟아 있고, 250여 세대가 거주하는 산업마을로 변모했다. 송악읍 고대2리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가족 같은’ 마을 공동체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
바다에서 공장으로, 70년 세월의 변화
고대2리는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마을이다. 과거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특히 굴 따기와 바지락 캐기, 낙지잡이가 주요 소득원이었다. 신종국 노인회장은 “옛날에는 바다가 매립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생활했다. 한창 가을과 겨울에는 굴을 따고 조개를 잡아 풍족하게 먹고살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낙지를 많이 잡을 때는 한 번에 70마리 정도 잡기도 했고, 그물을 치면 숭어 같은 물고기도 많이 잡혔다”고 말했다.
마을 인근에는 30만 평 규모의 염전도 있었다. 많은 주민이 이곳에서 일하며 고된 노동 속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는 매립되었고, 염전은 문을 닫고 농경지로 바뀌었다. 이후 대기업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현재는 현대제철, 동부제철 등이 자리한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조창모 감사는 “우리 지역은 예전에 전통적인 농경 사회였는데, 지금은 많은 공장이 들어서면서 공업지역으로 변했다”며 “지역 주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외지 인구 늘었지만, 공동체는 굳건
현재 고대2리에는 원주민 70세대와 외지인을 포함해 총 25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공업화의 영향으로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마을 공동체의 전통은 여전히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이미선 이장은 “우리 마을은 단합이 잘 되고, 어르신들의 마음이 옛 시골 어르신들처럼 넓다”며 “서로 아끼며 매일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대2리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젊은 지도층이 마을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장을 비롯해 반장, 총무 등 주요 임원들이 모두 젊은 세대로 구성돼 있다.
이재환 반장은 “젊은 사람들이 노인 공경을 잘하고, 어르신들도 젊은이들이 추진하는 일에 많이 협조한다”며 “그래서 마을 일이 수월하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세대 조화가 가능한 이유는 농업 승계와 인근 공장에 마련된 직장 덕분이다.
이미선 이장은 “자녀들이 부모님이 하던 농사일을 이어받아 하고 있어 마을 현안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바로바로 대처할 수 있다”며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서로 의지하는 효자, 효녀들”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공업화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 악화다. 이미선 이장은 “옛날에는 굉장히 자연으로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환경적으로 많이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반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신종국 노인회장은 “자식들과 지역 사람들이 직장을 구해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면”이라고 말했다. 조창모 감사 역시 “먹고사는 직장이 주변에 많이 생겼다는 점은 좋아졌지만, 환경 변화가 심각하고 외지인이 많아져 여러 불편함도 있다”고 양면성을 지적했다.

노인회 43명·부녀회 18명, 활발한 활동
고대2리의 마을 공동체 활동도 활발하다. 노인회는 43명, 부녀회는 18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최고령자는 90세가 넘는다.
신종국 노인회장은 “우리 고대2리 노인회는 회원들 마음이 정말 좋아서 한 가족처럼지낸다”며 “매일 식사도 제공하고, 마을회관에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며 지낸다”고 소개했다.
부녀회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옥 부녀회장은 “해마다 도자기 수업도 하고 꽃밭도 가꾼다”며 “걷기 운동과 마을 잔치도 다 함께 참여한다”고 말했다.
시집살이와 7남매, 고생했던 세월들
인터뷰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결혼으로 이곳을 찾은 이분들이다. 어르신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농촌 여성들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김기숙 어르신은 1973년 대천에서 왔다.
“갯벌에서 일하는 건 절대 못 하겠더라. 여기서는 굴 따러 가고 바지락 잡으러 가는데, 나는 그걸 할 줄 몰라서 집에서 논밭 일만 힘겹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황정순 어르신은 19세에 결혼한 후 고대2리로 와 7명의 시동생을 돌봐야 했다. “시어머니는 아들만 낳고 나는 딸만 낳아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며 “그때는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전통 행사 복원과 마을 시설 자랑
고대2리에는 과거 송악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전통 행사가 있었다. 이미선 이장은 “추석에 마을 전체가 모여 장기자랑을 했다.
우리가 처음 시작해서 다른 마을들도 많이 따라 했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지만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월이면 농악패가 집집마다 다니며 건강과 안전을 비는 행사도 있었다고 한다.
신종국 노인회장은 “거북놀이 같은 전통 놀이도 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마을 시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 마을회관을 비롯해 잔치방, 24시간 찜질방, 농기계 보관 창고, 운동기구 등이 완비되어 있다. 조창모 감사는 “외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시설이 잘 돼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변화 속에서도 지켜가는 마을 공동체 정신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고대2리 주민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마을 공동체 정신이다.
류종수 총무는 “마을 주민들이 무척 단합이 잘 되고 가족같이 지낸다”며 “꽃밭 가꾸기나 예초기 작업 같은 마을 공동 작업에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마을 잔치도 늘 함께한다”고 자랑했다.
이재환 반장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함께 돕는다”며 “농사일로 건강이 안 좋아진 분이 계시면 다 같이 가서 일을 거들어 드린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