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뜰의 한 농지에서 비가내리는 와중에도 벼 베기 작업이 한창이다.
채운뜰의 한 농지에서 비가내리는 와중에도 벼 베기 작업이 한창이다.

“살다살다 가을철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적을 본적이 없습니다.”

“하늘에 무슨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리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벼도 베어야 해야 하고 고구마도 캐야하고, 마늘도 심어야 하는데 막막하기만 합니다.”

올해 여름 역대 폭우로 물난리를 겪은데 이어 또 다시 가을비로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9월 당진에는 무려 449.2mm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2021년 이후 최대치이자 역대급 강수량이었다. 10월 강수량도 16일 현재 123.7mm의 비가 내려 전년 동월(128.9mm) 총량에 육박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이로 인해 수확기 농민들은 하늘만 처다보며 비가 그치기만 바랄뿐이다. 소위 가을 장마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지역의 한 농민은 “예전에는 9월과 10월이면 맑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장마처럼 비가 계속 내린다”라며 “벼가 익어갈 때 물에 잠기면 그냥 끝”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달라진 가을 날씨

당진시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집계한 최근 5년간(2021~2025년) 가을철 강수량 데이터를 확인해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2021~2024년 9월 평균 강수량은 202.2mm로, 가을철(9~11월) 전체 강수량의 56.5%가 이 한 달에 집중된다. 특히 2024년(264mm)에 이어 2025년 9월에는 무려 449.2mm가 쏟아지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제는 이 시기가 벼의 등숙기와 고구마 수확 준비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2024년 가을철 총 강수량은 461.5mm로 전년 대비 42.4% 급증했고 2025년은 9월 한 달에만 449.2mm를 기록한 데 이어 10월 16일까지 123.7mm의 비가 더 내려, 이미 전년도 가을철 총 강수량을 훌쩍 넘어섰다.

당진시의 한 관계자는 “9월에 이렇게 많은 비가 집중되는 현상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당진시농업기술센터 김석광 소장은 “가을장마로 무·배추에 무름병이 많이 발생하고, 마늘 같은 동계 작물을 파종도 못 하고 있으며 벼 수확량은 평년작 수준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비가 계속 와서 벼가 쓰러지면 품질 저하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쓰러져서 물에 잠긴 벼는 싹이 나고 있고 서 있는 벼도 습도가 높다 보니 일부 수발아 증상이 있다”며 “또한 고구마는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최대한 빨리 수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수확량·품질 동반 하락

농촌진흥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벼의 등숙기(출수 후 7~40일)에 침수 피해를 입으면 등숙률이 급격히 감소한다. 특히 유숙기(출수 후 7일)에 4일 이상 물에 잠기면 등숙률이 20% 이상 떨어지고 완전미 비율도 현저히 낮아진다.

또한 10월 강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수발아 피해다. 벼 이삭이 완전히 익기 전 비를 맞으면 이삭에서 싹이 트는 현상으로 도정률이 최대 26%까지 낮아진다.

고구마 수확 못해 발만 동동

고구마 농가의 피해는 더욱 직접적이다. 고구마는 9월 하순부터 10월 중순이 수확 적기인데 이 시기 강수량이 급증하면서 수확 작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재배 지침에 따르면 고구마는 토양이 습한 상태에서 수확하면 수분 함량이 높아져 저장 중 호흡작용이 방해받고 부패가 빨라진다. 특히 고구마는 기온이 10℃ 이하로 떨어지기 전,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을 완료해야 하는데 잦은 비로 수확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대면에서 고구마 1ha를 재배하는 박 모씨 씨는 9월과 10월 내내 비를 피해 수확 타이밍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10월 들어서 비가 그치질 않더라고요. 하루 맑다가 비, 이틀 맑다가 또 비, 땅이 마를 새가 없었어요. 결국 억지로 캤는데 저장성이 걱정됩니다.”

고구마는 수확 후 ‘큐어링(curing)’ 과정을 거쳐야 저장성이 높아진다. 온도 30~33℃, 습도 90~95%에서 4일간 처리해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과정인데 습한 상태로 수확된 고구마는 이 과정에서도 부패율이 높아진다.

당진시 농업인경영인회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는 이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뉴노멀’이 됐다”며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뚜렷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9월은 ‘청명한 가을 하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의 데이터를 보면, 2021년 183.3mm에서 시작해 2025년 449.2mm까지 9월 강수량이 2.5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제는 국지성 호우가 9월까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 됐다.

선제적 대응으로 피해 최소화해야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단기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배수 시설 개선이다. 당진시 논의 상당수가 저지대에 위치해 집중호우 시 배수가 원활하지 않다.

또한 침수 발생 시 신속한 배수, 흙앙금 세척, 병해충 방제 등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고구마는 강우 직후 수확을 피하고, 토양이 충분히 건조된 후 맑은 날을 택해 수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침수에 강한 벼 품종 개발과 재배 시기 조정도 검토되고 있다. 9월 집중 호우를 피하기 위해 조생종 품종 비율을 늘리거나, 이앙 시기를 앞당겨 8월 중 수확을 완료하는 방안이다. 다만 이 경우 고온 피해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대안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역별 기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재배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