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면 산성리의 전경
정미면 산성리의 전경

1957년까지 서산군에 속했던 정미면 산성리는 당진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서산시장을 가기 위해 거쳐 가는 마을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마을에는 슈퍼, 약국, 주막 등이 성황을이뤘다.

문한석 이장은 “그때 당시만 해도 잘 사는 마을이었다”며 “다만 워낙 산골이다 보니 정서적인 면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대가족 시대 한 집에 10명에서 15명씩 살았고 농지가 적어 전부 다 산림이었다”며 “80년대 초반 야산 개발 사업으로 낮은 산은 전부 농지를 만들면서 농업이 조금 활발하게 발달했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경숙 부녀회 총무, 마을주민 한남이(86), 심태진(93), 정월옥(88), 현갓난(81), 나천화(80), 강혜정(89), 강추자(83), 문한석 이장
사진 왼쪽부터 김경숙 부녀회 총무, 마을주민 한남이(86), 심태진(93), 정월옥(88), 현갓난(81), 나천화(80), 강혜정(89), 강추자(83), 문한석 이장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낸 할머니들

산성리 할머니들은 젊은 시절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강추자(83) 할머니는 24살에 고대면 당진포2리에서 시집왔다. 강 할머니는 “신작로가 작아 사람 하나 다닐 만하고 양쪽으로 다 솔밭이었다”며 “마을의 집들은 다 초가집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마을에는 100가구 정도가 살았다. 강할머니는 “시집살이 하느라 마을 어디 나가지도 못했다”며 “바깥에 나갔다 오면 시어머니한테 혼이 났다. 밥을 잘 지으라고 하면 드럽게 했다고 혼나고, 대충 하면 또 대충했다고 혼났다”고 했다.

강혜정(89) 할머니는 18살에 고대면 항곡리에서 산성리로 시집왔다. 강 할머니는 “중매서서 왔는데 중매쟁이가 거짓말을 했다”며 “소작지 열 마지기, 제논이 열 마지기, 집도 크다고 했는데 막상 시집을 오니 제 논은 세 마지기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가난이었다. 신랑과 함께 나무를 해서 서산장에 팔아 쌀 한 되씩 사다가 죽을 쑤어 먹었다. 나천화(80) 할머니는 “나무를 해서 서산장에 가려면 30리를 걸어서 갔다”고 했다.

샘터에서 빨래를 하면서도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했다. 절구대로 방아를 찧어 밥을 해 먹고, 물도 길어서 날라 먹었던 시절이었다.

장수와 되백골

산성리는 자모산 상부에 옛 성터가 있어 ‘산성’이라 불렸다. 이곳에는 거북골, 되백골, 상중말, 장수골, 탑골, 양지말 등 여러 자연부락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장수골은 오래도록 살다의 ‘장수’가 아닌, 물이 오래 나온다는 뜻에서 ‘장수’로 불렸다. 되백골이라는 부락은 비옥한 흙이 있어 보리 한 되를 심으면 백 대를 먹었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었다.

산성리에는 당진과 서산의 경계인 회천고개가 있었다. 정미면 승산리부터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까지 총 10㎞ 정도 구간을 지금은 ‘회천로’라고 부른다. 당시 회천고개 인근에는 슈퍼, 주막, 술집, 약국, 서당, 강습소 등이 있었던 번성한 곳이었다.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 두 개의 산등성이로 이뤄진 자모산은 그 모습이 마치 어머니와 아들 같아 보인다. 남편이 뱃일을 나간 뒤 소식이 끊기자 부인과 아들이 남편을 기다리다 산봉우리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큰 봉을 엄마봉, 작은 봉을 아들봉이라고 부른다.

양부모를 극진히 모신 효자

산성리에는 고 문인환 씨의 효심을 기리며 지은 효자문과 효자비가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문 씨는 양부모를 모셨는데, 그가 9살때 부모가 큰 병을 앓자 지극히 간호했다. 이후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산에 가서 3년 상을 치렀고 이를 보고 감명받은 사람들이 효자문과 효자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효자문 인근에는 거북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거북바위는 한 주민이 밭을 갈다가 큰 돌이 걸려 파보니 거북이가 나왔다는 설에서 만들어졌다.

산성저수지와 누에마을

산성리에는 산성저수지가 있다. 마을회관 인근에 있는 산성저수지는 일반 저수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위에서 바라봤을 때는 저수지 물이 하늘을 비춰 신비롭다. 주민들에 따르면 “산성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때 농사짓기 위해 판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문한석 이장은 “산성저수지는 장수골에서 흘러나온 물로 형성된 저수지”라며 “산성리는 지대가 높아 농업용수 공급이 안 되고 있어 저수지 물을 사용한다”고 했다.

과거 산성리는 누에를 생산하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의 주 소득 작목이 누에였기 때문에 집집마다 누에를 키우는 잠실이 있었다. 잠실은 비단실을 얻기 위해 누에를 사육했던 방을 말한다.

현재는 잠실이 거의 없어졌지만, 옛날엔 산성리 곳곳의 집에서 누에를 먹였다.

문한석 이장과 김경숙 부녀회 총무가 마을의 발전계획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문한석 이장과 김경숙 부녀회 총무가 마을의 발전계획을 이야기 하고 있다

61가구 82명이 사는 작은 마을로 변화

산성리는 현재 61가구에 82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7~8년 전만 해도 100여 가구가 됐었는데 급속도로 가구 수가 줄었다. 61가구 중 1인 가구나 홀로 가구가 24가구에 달한다.

문한석 이장은 “노령화로 인해 고령 인구가 많다 보니까 혼자 사시는 분들, 특히 요양원 가신 분도 있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며 “그로 인해 빈집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가구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성리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 공간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빈집을 철거해 공원을 조성하거나 농지로 활용하는 계획이다.

현재 산성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지만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한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회춘유랑단과 부녀회 댄스동아리 활동, 마을 축제 등으로 지역에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회춘유랑단이 만든 기적

회춘유랑단은 2018년 창단돼 지금까지 100회 이상 공연에 참여했다. 평균연령 84세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이 극단은 지역 초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을 방문해 지역의 전설과 설화를 소재로 인형극을 선보였다. ‘안국사 배바위’, ‘우리 동네 잔칫날’ 등 마을과 관련된 내용으로 인형극을 만들었으며 2018년에는 충남아마추어 연극제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회춘유랑단의 활동은 마을을 변화시켰다.

문한석 이장은 “회춘유랑단의 활동은 마을 주민의 인식변화를 가져왔고, 그 변화는 곧 마을 발전의 원동력이 돼 충남형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는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며 “황무지였던 마을회관 주변은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는 행복 가득한 웃음이 넘치는, 모두가 함께하는 풍요로운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2019년에는 당진시 주민자치 프로그램 발표와 충청남도 주민자치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2022년 9월 22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가 주관한 제9회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산성리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과 포상금 1500만 원을 받았다.

화합을 이끄는 리더십

김경숙 부녀회 총무는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된 배경으로 문한석 이장의 리더십을 꼽았다. 김 총무는 “화합을 하게끔 하려면 계기가 있어야 한다”며 “계기를 만들어 주고 모일 수 있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적이든 심적이든 보상을 해 줬다”고 말했다.

마을 제초 작업이나 청소를 할 때도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조그마한 상품이라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김 총무는 “이장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마을 곳곳이 개선됐다”며 이로 인해 주민들의 자존감과 자부심도 높아졌다.

김 총무는 “주민들이 체육대회나 행사에 가시면 ‘너네 이런 거 있어? 우린 이런 거 있어’라며 자랑하신다”며 “마을 어르신들이 문한석 이장을 산성리 마을의 재산이라고 생각하신다. 남부럽지 않은 재산, 어디 마을에서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마을회관 앞 장독대 모습
마을회관 앞 장독대 모습

감자 축제로 시작된 마을 공동체

산성리의 또 다른 자랑은 매년 열리는 마을 축제다. 2017년 시작된 이 축제는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문 이장은 “2017년 마을회관 앞 휴경지를 노인회에서 경작하고 싶어했는데 워낙 연로하셔서 청년회와 부녀회가 협조해서 감자를 심었다”고 했다.

6월 감자 수확 시기가 되자 일손이 부족했다. 면사무소와 시청의 봉사활동 참여자를 모집해 함께 수확하기로 했다. 문 이장은 “봉사활동 오신 분들께 식사대접을 해야 하는데 그냥 하기엔 밋밋해서 축제 형식으로 해보자고 했다”며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연출해서 해보니 마을 주민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했다.

첫해 가을에는 농산물 축제도 열었다.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며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됐다. 매년 농산물 판매, 명랑 운동회, 코스모스 손수건 만들기, 전통 떡 만들기 체험, 프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올해는 7월 집중호우로 마을회관 앞이 유실돼 축제를 열지 못했지만 내년부터는 다시 이어갈 계획이다.

2027년까지 종합개발 사업 추진

산성리는 현재 여러 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 이장은 “2017년부터 마을을 활성화시켜야겠다는 준비를 했다”며 “소규모 사업인 마을 환경개선사업부터 시작해 중규모 사업으로 건축물도 짓고 다목적 회관도 건축하고 산책로도 만들고 마을 안길 재정비 사업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종합개발 사업이 진행된다. 문이장은 “노령 인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고 소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2027년까지 종합개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 착공에 들어가는 충남형 공동 생활홈은 요양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시설이다. 15인실 기준으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문 이장은 “우리 부모님 세대는 요양원 가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다”며 “앞으로는 커뮤니티 케어, 지역 내에서 요양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을 주민이 자체적으로 노년을 살 수 있게 하려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문 이장은 “그동안 마을 사업을 이끌어 오면서 힘이 들었지만 힘이 든 만큼 보람도 있었다”며 “공동생활홈부터 마을 산책로, 농산물 선별 포장 시설까지 마무리되면 우리 마을이 노령화로 인한 농촌 마을의 표본이 돼서 앞으로 다른 마을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을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