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시와 한국전력공사가 8년 동안 이어져 온 송전선로 갈등을 국민권익위원회 조정으로 일단락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협력 재개’라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뿐, 지반침하의 책임 규명과 피해 보상, 국가 전력정책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항소심까지 거듭 승소한 당진시의 법적 판단이 대화 테이블에서 어떻게 반영될지도 관건이다.
잇단 소송에서 당진시 ‘3연승’
지난 9월 대전고등법원은 한전이 청구한 ‘부곡공단 침하 관련 원상회복 명령 취소’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2023년 행정심판, 2024년 1심에서도 시가 승소한 데 이어 행정심판–1심–항소심 모두 당진시가 이긴 셈이다.
부곡공단 침하는 한국전력이 개발행위 허가 없이 직경 9m, 깊이 60m의 수직구와 지하 터널을 굴착하며 발생했다는 게 당진시의 판단이다. 법원도 “도로·녹지 점용 허가만으로는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를 대체할 수 없다”고 명시하며 시의 원상회복 명령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한전이 제기한 당진시장·공무원 상대 직권남용 고소도 불송치로 종결되며 법적 공방은 사실상 끝났다.
승소 직후 ‘상생 협력 재개’ 발표
이런 상황에서 당진시와 한전이 상행 협력 재개를 발표했다. 지난 18일 열린 국민권익위 현장조정회의에서 양측은 △당진시, 중단됐던 인허가 심의 절차 재개 △한전, 특별사업비 지원(2017년 상생협약 이행) △부곡공단 침하 보상은 내년 추가 조정 △향후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사업 공동 협력 등을 합의했다.
당진시와 한전은 “갈등 해소”를 강조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법적 책임 문제는 그대로인데 협력만 먼저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승소 이후에도 실질적 후속조치가 아직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지반침하 보상·원상회복은 내년으로
부곡공단 일대는 건물 균열, 지반침하, 기울어짐, 도로 파손 등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기업은 영업 차질까지 겪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정안에서는 △보상 범위 △대상 기업 △손상 원인 평가 △원상회복 방식이 모두 내년 국민권익위 추가 조정으로 넘겨졌다.
즉, 조정안 발표는 해결이 아니라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에 가깝다. 당진시가 법원에서 이긴 원상회복 명령이 어떻게 실질적 조치로 이어질지, 피해 기업들의 민사소송과 병행해 어떤 대책이 마련될지 역시 과제로 남았다.
전력망 정책의 구조적 갈등 여전히 숙제
당진은 발전소·송전선로가 집중된 지역이다. 전력은 수도권으로 가지만 안전·환경·시설 부담은 지역이 떠안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
이번 조정은 갈등을 일단 봉합했지만 송전선로 노선 결정 구조, 주민 수용성 확보, 지중화 공법의 안전 기준, 사고 재발 방지 등 기본적인 제도 개선은 여전히 뜯어봐야 할 부분이다. 8년 갈등을 협력 국면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 되지 않은 △책임 규명 △보상 대책 △안전 확보 △정책 구조 개선 등의 숙제는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