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한 세상에서 기다림이란 단어는 낯선 단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 빠르고 더 합리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기다림이란 어리석어 보이기 마련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고 버려지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닭은 스무 하루동안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보게 되고, 산모는 열 달동안 아이를 품을 때 생명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씨를 심고 내일 거둘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하나님의 창조섭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시간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겉모습만 보게 됩니다. 기다림이 열매를 맺게 하고, 기다림이 사랑을 이루고, 기다림이 생명을 만나게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는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한 해 동안 수고하며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열매가 맺어질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뢰한다면 기다립니다. 또 사랑하면 기다립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이유는 신뢰할 만한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만은 아닙니다. 그것 보다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기다림의 끝이 공허할 것 같아서 쉬이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다림이 없는 세상이 오히려 공허한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믿음도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은 거룩한 시간입니다. 수학적으로는 계산이 안될지 모르나 그 기다림은 꽃을 피우고 사랑을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스마트한 세상이라고 해도 이런 기다림 때문에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합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서글퍼 집니다.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우리를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세상이 포기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며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소망이 있습니다. 소중한 인생입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듯이 나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한 해의 끝자락에서 기다림의 거룩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 마음가운데 신뢰와 사랑이 더욱 깊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