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당진에 와서 살다 보니까요. 당진에 무슨 역사가 있고,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직접 발로 뛰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찬용 단장의 말처럼 HEPA(해파) 봉사단(단장 조찬용)은 ‘알아보자’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현대제철 임직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당진으로 모여든 만큼 이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문화유적 탐방은 어느새 환경정화, 생활봉사, 재난 현장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역사 탐방 봉사단, 해파의 시작

해파 봉사단은 당진시 문화재팀과 연계해 지역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탐방해 왔다. 조 단장은 “유적지에 가면 역사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당진 시내에서 차로 몇 분, 도보로 몇 분, 근처에 뭐가 있는지까지 알게 된다”며 “이런 정보들을 정리해 책자로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해파 봉사단의 탐방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다. 유적지 주변을 함께 정리하고, 쓰레기를 줍는 환경 봉사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걷다 보니 지저분한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게 조 단장의 설명이다.

기업 동호회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봉사로

해파 봉사단은 현대제철 사내 동호회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임직원 약 30명과 일반 시민 60여 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시민들은 회비를 내지 않는다. 사내 동호회 지원과 회사의 봉사 지원 제도를 활용해 버스 대여, 간식, 식사 비용까지 봉사단이 부담한다.

조찬용 단장은 “우리 회비를 우리만을 위해 쓰기보다 당진 시민들과 나누자는데 단원들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기업 동호회가 지역사회로 확장된 셈이다.

이관행 센터장이 만든 ‘우리봉사단’

해파 봉사단의 활동이 넓어지면서 보다 생활 밀착형 봉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이관행 센터장을 중심으로 별도의 소규모 봉사 모임인 ‘우리봉사단’이 꾸려졌다.

역사 탐방과 환경 봉사를 하다 보니 다문화 가정, 독거 어르신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이웃들을 자주 만나게 됐고, 단순 방문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봉사단은 조명 교체, 방충망 수리, 방범등 설치 등 기술이 필요한 봉사를 맡는다. 자재를 선구매해 직접 교체하고, 이후 봉사 실적을 회사에 제출해 지원을 받는 방식이다.

“연락 오면, 가야죠”

지난해 7월 기록적인 폭우로 당진 전통시장과 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해파 봉사단은 현장에 있었다. 전통시장 침수 복구, 난지도 해수욕장 부유물 정리, 산사태로 덮인 창고 정리까지 이어졌다.

“연락이 오면 안 갈 수가 없죠.” 소리 내 웃으며 말하는 조 단장의 이 말처럼, 단원들은 휴가를 내고 쉬는 날을 쪼개 현장으로 향했다. 체육행사, 축제 질서 유지, 각종 지역 행사에서도 해파 봉사단의 모습은 익숙하다.

다문화 가족과 함께한 역사 현장

조 단장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꼽은 건 다문화 가정과 함께한 역사 탐방이다. 청와대, 경복궁,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던 날, 참가자들은 해설을 듣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 설명을 들으면서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역사 탐방은 조 단장에게도 ‘지식’이 아닌 ‘체험’으로 남았다고.

2026년, 새로운 시도

해파 봉사단은 올해 합덕 지역 고려인 공동체와 연계한 체험형 활동을 새롭게 준비 중이다. 노래와 놀이를 통해 한국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계속 가는 거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조 단장은 봉사에는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당진의 역사를 걷고, 이웃의 삶을 밝히는 사람들. 현대제철 해파 봉사단 그리고 우리봉사단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당진을 비추고 있다.

[미니 인터뷰]

조찬용 단장

“해파 봉사단은 생긴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당진시를 위해 시민들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용수 부단장

“연락이 오면 안 할 수가 없어서요. 자부심을 갖고 하고 있습니다.”

이관행 센터장

“연세 드신 분들 댁 조명을 바꿔드리면 ‘백내장 수술한 것처럼 세상이 환하다’는 말씀을 하세요. 자녀를 대신해서 해드린다는 마음으로 하니까 그게 가장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