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 여파가 봄 영농철 당진 농촌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면세유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는데다 비닐 원료 공급은 끊길 위기고 비료 수급마저 불안정한 삼중고에 처한 농민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농민들은 농번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농업용 비닐과 비료를 구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이후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시설원예 농가 핵심 연료인 면세유 가격이 한 달 새 13% 넘게 상승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를 보면 지난 8일 기준 당진 지역 면세유 실내등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400원대이다. 지난달 3일(1115원)과 비교해 18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으며 인상폭은 25.5%에 달했다. 정부가 지난달 13일부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지만 일반 휘발유와 경유와 달리 면세유, 실내등유는 오히려 더 올랐다.

지역의 한 농협 주유소의 기름 판매가격을 보면 면세유 기준 휘발유 1140원, 경유 1430원, 등유 1430원이다. 정상가격은 휘발유 1951원, 경유는 2008원, 등유 1652원에 판매되고 있다.

시설하우스 농가는 난방비가 전체 생산비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있어 피해가 특히 크다.

고대농협 관계자는 “면세유가 크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농민들에게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다방면으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비닐 원료 50% 인상

비닐 수급도 위기다. 농업용 비닐 주원료인 나프타에서 추출하는 폴리에틸렌 공급이 중동 사태 이후 원활하지 않아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농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농업용 비닐 제조업체 재고 현황을 파악한 결과, 성수기 하루 50톤이상 필요한 원료가 현재 한 달치 재고만 남았다. 이런 추세라면 5월 중순에는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할 처지다. 중동 사태 이후 원료 공급가도 50% 인상됐다.

멀칭 필름은 봄철 물량은 확보됐지만 6월 이후 수요 대응을 위한 폴리에틸렌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역 농협은 현재까지 재고는 충분하다고 설명하면서도 사재기는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품귀를 우려한 농민들이 비닐 등 농자재를 대량 구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대면의 한 농민은 “전쟁여파가 지속되면서 농업용 비닐 수급이 어려워 질 것이라는 이야기에 농협에서 미리 구매 신청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비료 요소 가격 54% 폭등

비료 수급도 심상치 않다. 동남아산 요소 가격은 지난 8일 기준 톤당 750달러로 전쟁 이전 대비 약 54% 상승했다. 현재 완제품 재고는 8만6000톤 수준으로 4월까지는 공급이 가능하고 추가 생산을 통해 6월까지 버틸 수 있지만 가격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 비료 원료인 요소는 일부 물량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고 있어 중동 사태 장기화 시공급 불안을 배제할 수 없다.

수입에만 의존하는 양액 비료와 블루베리 상토는 국내 입항 배편이 끊기면서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현장 보고도 있다. 정부는 시설원예 농가 부담 완화를 위해 면세유 유가연동 보조금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신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충남도는 무기질 비료 인상분의 80% 이내를 농가에 사전 차감 지원하기로 하고 예산을 선제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고대농협 관계자는 “다행히 비료와 비닐 등 농자재 수급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덕분에 농민들에게 공급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다”라며 “다른 농협들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협의 관계자는 “이삭거름용 비료 등 농가에 필요한 비료 물량이 이미 다 소진된 상태”라며 “품귀를 우려한 농민들이 이삭거름 비료까지 미리 사들여 보관하는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농협 창고의 재고 물량도 바닥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기화하면 감당 못 해”

농업관계자들은 농가 경영비 급등이 시차를 두고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로 전가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설원예 작물은 난방비 비중이 높아 생산비 증가가 출하 가격에 빠르게 반영된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이번 상황을 ‘에너지와 원자재발 공급망 리스크의 농업 확산’으로 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진흥청, 지자체, 농협 등과 점검반 약 240명을 구성해 비료 제조업체 20곳과 판매업체 약 700곳에 대해 현장 점검을 벌이고있다. 그러나 현장 농민들 사이에서는 정부 대책이 모니터링과 검토 중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해 농사의 첫 단추를 꿰는 봄 영농철에 에너지와 농자재 가격이 동시에 폭등하면서 당진 농촌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십 년 농사를 지어 온 농민들조차 “이 가격이면 농사를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말할 만큼 경영 압박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어기구 의원실 관계자는 “유가 문제가 큰 상황에서 농해수위 차원의 농어업인 면세유 예산이 이번 추경에 반영됐지만 당초 편성액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을 증액하여 예결위로 넘긴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에서 예산을 증액해 예결위로 넘겼으나, 전체 국가 예산이 한정돼 있어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가 확정될지는 예결위 심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진시도 정부의 이번 전쟁추경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충남도 추경을 거쳐 원포인트 추경을 계획하고 있다.

당진시기획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정부의 추경예산과 충남도 추경이 결정된 이후 시에서도 추경 예산안이 확정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