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당진 남부권역(합덕읍·우강면) 일대에는 가족 단위 고려인 이주가 증가하며 이른바 ‘고려인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학교 현장의 다문화 학생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노동·교육·복지·주거 전반에서 지역사회의 구조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고려인은 여전히 낯선 존재이거나 갈등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본지는 고려인을 ‘문제’가 아닌 ‘이웃’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기 위해 대한고려인협회 당진지부, 세한대학교 웹툰애니메이션학과와 협력해 웹툰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의 고려인 이야기를 총 6회에 걸쳐 연재하며,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2026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홀로 딸을 키우던 김 빅토리아 씨는 더 나은 교육 환경과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한국에서 지금은 카페 점장으로 근무하는 동시에 대한고려인협회 당진지부장을 맡아 지역 고려인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아이 키우려면 더 많은 돈 필요”
고려인 4세 김 빅토리아 씨는 카자흐스탄에서 딸 엘레나를 홀로 키우며 생활했다. 이혼 후 생계와 양육을 혼자 책임져야 했던 그는 아이의 교육비와 생활비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빅토리아 씨가 카자흐스탄 가게에서 일할 당시 월급은 약 50만 원 수준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후 공인중개사로 직업을 바꾸며 월 1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었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씨는 “딸의 미래를 위해 더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며 “월 2000달러 이상의 수입을 목표로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2021년 6월 친구와 함께 한국에 입국한 그는 약 1년 뒤 딸 엘레나와 다시 한국에 들어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딸을 데리고 다시 입국한 이유에 대해 빅토리아 씨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또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루 12시간 공장 근무”
한국에 온 뒤 빅토리아 씨가 가장 먼저 마주한 어려움은 언어와 일자리였다.
그는 생계를 위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했지만 노동 강도는 만만치 않았다. 빅토리아 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고 오래 서 있어야 했다”며 “2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정도였다. 건강에 좋지 않아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언어 장벽도 컸다. 그는 “입국 직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것이었다”며 “영어로 소통하려 해도 발음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빅토리아 씨는 이민자를 위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들으며 한국어를 익혔고, 틈날 때마다 영상과 책으로 공부했다. 또한 2023년부터는 매주 일요일 도담도담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되는 고려인 주민을 위한 한국문화로 배우는 실용 한국어 수업에 참여했다.

“카페 근무하며 한국 문화 이해”
빅토리아 씨는 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으며 한국어 교사였던 손석희 씨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 생활과 자녀 양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깊어졌다.
평소 당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손 씨는 이주민들이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이에 고려인들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읍내동에 러버스커피를 운영하게 됐다.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빅토리아 씨는 손석희 씨의 제안을 받아 지난해부터 러버스커피 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빅토리아 씨는 “처음에는 바리스타 경험도 없었고 한국어로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카페에서 일하며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한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외로움 덜고자 고려인협회 가입”
빅토리아 씨는 2023년 대한고려인협회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였다. 그는 “친구가 없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 물어볼 곳이 필요했다”며 “협회 활동을 하며 외로움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한고려인협회는 고려인이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고 권리를 지키며 역사적 조국인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빅토리아 씨는 지난 4월 대한고려인협회 당진지부장이 됐다.
그는 현재 고려인들이 정착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비자 문제를 꼽았다. 빅토리아 씨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온 경우 배우자가 F-1(방문동거) 비자를 받으면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생활비 부담이 큰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당진시에 거주하는 고려인 중 협회에 가입한 사람이 많지않다. 협회의 존재들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협회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병원·학교·행정…모든 것이 처음”
빅토리아 씨에게 한국 생활은 단순한 정착이 아닌 엄마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건강검진 신청부터 학교생활, 지역아동센터 이용까지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익혀야 했다. 빅토리아 씨는 “카자흐스탄과 제도와 방식이 달라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하나씩 배워갔다”며 “학교 앱으로 오는 공지사항도 번역기를 통해 확인했고, 병원에서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소통했다”고 말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의 관계는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그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었고, 사춘기 자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딸이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나 학교생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한동안 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딸 엘레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던 그는 한국어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또한 유튜브 등을 통해 사춘기 자녀 교육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이해의 폭을 넓혔고, 딸과 함께 영상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빅토리아 씨는 지역아동센터와 이웃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는 대부분 비용을 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고 학교에서도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노트와 볼펜 같은 학용품도 지원해 주는 등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딸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건강하고 바른 성품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며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싶고, 언젠가는 내 집을 마련해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