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환
데니스 환
당진방송 관련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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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당진 남부권역(합덕읍·우강면) 일대에는 가족 단위 고려인 이주가 증가하며 이른바 ‘고려인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학교 현장의 다문화 학생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노동·교육·복지·주거 전반에서 지역사회의 구조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고려인은 여전히 낯선 존재이거나 갈등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본지는 고려인을 ‘문제’가 아닌 ‘이웃’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기 위해 대한고려인협회 당진지부, 세한대학교 웹툰애니메이션학과와 협력해 웹툰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의 고려인 이야기를 총 6회에 걸쳐 연재하며,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2026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가족을 위해 일터로 나섰던 고려인 4세 데니스 환 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데니스 씨는 한국에서 겪은 시련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았다. 이제 그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고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새로운 꿈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에게 배운 한국 문화

데니스 씨의 할머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라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뒤 최종적으로 키르기스스탄에 정착한 고려인 2세다. 그는 할머니를 통해 한국의 이야기를 듣고 문화를 접했다. 할머니는 증조할머니에게 배운 시래깃국과 김치 등을 직접 만들어 데니스 씨에게 먹이곤 했다. 그런 할머니를 떠올리며 데니스 씨는 “아직도 할머니의 따뜻함을 잊지 못한다”며 이어 “한국 문화를 전해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며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학교 끝나면 일터로 향했던 14세

데니스 씨는 14세라는 어린 나이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터에 나서야 했다. 당시 아버지가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떠난 데다 한국으로 유학을 갔던 여동생 밀라나마저 돌아오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데니스 씨는 “촬영기사로 일한 것을 비롯해 웨이터, 이발사, 바리스타, PC방 관리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중학생이던 그는 학교가 끝나면 저녁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친구들과 만나 게임을 하며 쉴 수 있는 시간은 2주에 한 번 정도였다.

“한국에서 부딪혀 보고 싶었다”

2년 전, 데니스 씨는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다. 한국으로 떠난 아버지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는 당시를떠올리며 “키르기스스탄은 내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한 번 부딪혀 보고 싶었다”며 “무언가 잘 풀리게 될지 혹은 어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데니스 씨는 낯선 타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가 일하며 모은 600달러를 들고 키르기스스탄에서의 동네 사람들이 여럿 살고있던 합덕읍을 찾았다.

기대와 달랐던 한국의 현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찾아온 한국에서 데니스 씨가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한국을 찾은 가장 큰 이유였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데니스 씨는 “아버지와는 만나지 못했다”며 “연락을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고향보다 나은 경제적 상황을 기대했지만 구직부터 쉽지 않았고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노동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지원하는 곳열심히 일하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다. 그는 “지원하는 곳마다 자리가 꽉 차 있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며 “일을 하면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떼인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체국 택배 분류, 자동차 공장 등을 거쳐 현재는 가죽 시트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주중에는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하며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쉬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낯선 사람과의 소통도 또 다른 벽이었다. 데니스 씨는 “한국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는데 직접 말하는 건 정말 어렵다. 발음이나 어법이 틀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면서 “혹시라도 내가 실수할까 봐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끄러웠던 적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서웠고 입을 닫고 내 안으로 숨어버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시련을 연료로 삼아

한국 사회에서 겪은 다양한 사건과 소통에 대한 두려움은 데니스 씨에게 고립감을 안겼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삼았다. 데니스 씨는 “누군가는 나를 속였고 누군가는 내게 진실을 말했다”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은 일들이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나만의 기준과 사고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배움 통해 길 열린다고 생각”

한국에서의 경험은 데니스 씨에게 학업과 삶에 대한 열망을 키우는 강력한 동기가 됐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친구와 함께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며 관심을 갖게 된 IT 분야를 더 깊이 배우기 위해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고된 노동을 겪어보니 저는 더욱 악착같이 노력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모든 과정이 제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그 시련들 덕분에 저는 더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하게 됐으니까요. 길은 배움을 통해서만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살고 싶다면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걸 이곳에 오고 나서 뼈저리게 느끼게 됐습니다.”

현재 그는 F-5(영주권) 비자를 취득해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을 좋아하는 여동생 밀라나도 곧 한국에 들어올 예정인 만큼 자신이 먼저 한국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데니스 씨는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며 “어떤 어려움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며 “내 안의 불꽃을 피워내고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전했다.

14세부터 일을 시작한 데니스(세한대 웹툰애니메이션학과 안예은 학생의 작품)
14세부터 일을 시작한 데니스(세한대 웹툰애니메이션학과 안예은 학생의 작품)
한국에서 낯선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서 낯선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다.
열심히 일하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다.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달리고 있다.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달리고 있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데니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데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