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 사라졌으니 제 소임도 다한 거지요”

농업기반공사 출범 앞두고 퇴임

“믿고 따라준 임직원·조합원에 감사”

“개인적으론 홀가분합니다. 그러나 조합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조합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물러나는 게 죄스러울 뿐입니다.”

90년 역사의 농지개량조합이 농어촌진흥공사와의 통합으로 '99년 12월31일자로 자동 해체되었다.

당진농지개량조합 첫 민선조합장으로 10년간 조합을 이끌어온 황규호 조합장(53세). 황 조합장은 지난 12월23일, 직원들과 이사들만 모인 자리에서 조촐한 퇴임식을 갖고 25년 농조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황 조합장의 퇴임은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는 새로 탄생하는 농업기반공사 당진지부의 지부장으로 가장 유력한 당사자였다. 그러나 황 조합장은 “본인은 조합장으로 선출되었지 정부투자기관의 직원으로 몸담은 게 아니”라며 미련없이 물러난 배경을 밝혔다.

“저에게 맡겨진 소임은 조합의 관리책임자였습니다. 조합이 사라졌으니 제 소임도 끝난거지요.”

황 조합장은 조합장 재직시 조합의 경영자립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온 인물로 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다. 농업용수공급과 수리시설의 유지관리라는 고유의 업무 외에 준설사업, 공업용수공급사업으로 매년 1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황 조합장 스스로도 “국고지원을 받지 않는 자립조합으로 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기반이 튼실한 당진농조라고 예외가 될 순 없었다.

황 조합장은 “쌀 자급이 가능해진 것은 조합 중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농지개량조합이 해온 일”이라며 “그러한 성과들이 통폐합 와중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황 조합장은 함께 일해온 직원들의 고용보장과 농민조합원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새로 탄생하는 농업기반공사에 거는 유일한 기대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그동안 예산편성에 일체 관여하지 않을 정도로 조합을 믿고 따라준 이사·대의원, 그리고 경비를 줄이기 위해 직급을 낮추고 수당도 덜 주어 왔음에도 묵묵히 감수하고 따라준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당분간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다는 황 조합장은 구정이 지나면 ‘한번도 비행기를 못 타본’ 부인 양기림씨와 함께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올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