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페이지나 펴놓고 노래를 불렀죠

책에 나와있는 코드를 하나하나 익히면서 말이죠

그게 음악과의 첫만남인 것 같아요”

동그란 탁자에 커피 한잔을 놓고 라흠수씨와 마주앉았다. 창밖의 거리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너머로 막 연푸른 잎을 틔우고 있는 봄 풍경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허공을 헤매는 커피향이 무감각해질 때쯤 라흠수씨는 음악과 자신과의 인연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숙명이라고. 음악은 제게 그런 거예요.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저를 쫓아와요. 참 질긴 인연이죠.”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라흠수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동안의 음악과의 인연을 되새겨보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달아나는 사람의 가슴은 얼마나 아린 것인가.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달아나려 했다고 말하는 라흠수씨의 얼굴에 얼핏 씁쓸함이 엉겼다. 창으로 짓쳐 들어오는 투명한 봄 햇살로 밝아진 탁자의 한쪽에 라흠수씨의 그림자가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문득 라흠수씨에게 음악은 저렇듯 평생을 함께 하는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예요. 형이 통기타를 사왔는데 어깨 너머로 기타 치는 걸 배웠죠. 왜 ‘흘러간 팝송’이라든가 ‘가요백과’같은 책 있죠. 아무 페이지나 펴놓고 노래를 불렀죠. 책에 나와있는 코드를 하나하나 익히면서 말이죠. 그게 음악과의 첫만남인 것 같아요.”

음악과의 첫만남 이후로 라흠수씨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꿈은 꿈으로만 머물러있을 뿐 라흠수씨에게 가수로의 길을 열어주진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노래대회에 여러번 출전했으나 입선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패와 좌절을 거듭한 라흠수씨는 잠시 꿈을 접었다. 멀어졌던 음악이 다시 손짓을 한 건 군대를 제대한 98년이었다. 기지시줄다리기 행사와 더불어 KBS 전국노래자랑이 당진에서 개최되었던 것인데 친구들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된 라흠수씨는 그만 1차예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라흠수씨는 풋 웃음을 지었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이죠. 1차예선에서 떨어진 사람들 중에 몇몇이 2차예선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뽑혔거든요. 그때 부른 곡이 박진영의 ‘Honey'에요. 우수상을 수상했죠. 심사위원들이 좋게 보셨나봐요.”

그렇게 음악은 라흠수씨를 다시 끌어당겼다. 같은 해에 KBS 전국노래자랑 상반기 결산에서 라흠수씨는 같은 노래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라흠수씨는 연말결산대회에도 나가 2등으로 입선하게 된다. 라흠수씨는 그 대회를 유난히 안타깝게 기억하고 있었다.

“준비한 곡은 조용필의 트롯트 곡이었어요. 그런데 피디가 점심시간에 방영된다는 이유로 박진영의 ‘Honey'를 부르라는 거예요. 한참 졸릴 시간에는 댄스곡이 제격이라고 말이죠. 어쩔 수 없이 ‘Honey’를 부르긴 불렀는데…… 모르겠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구요.”

99년 라흠수씨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생필품을 챙긴 가방과 약간의 돈과 기어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보듬고. 가슴 속에 끓고 있는 가수에 대한 열망이 라흠수씨를 부추겼으리라. 떠나야 돼, 머무를 순 없어, 떠나야 돼, 어서……하고.

라흠수씨는 곧바로 밤무대로 뛰어들었다. 어두운 공간, 쉴새없이 점멸하는 조명 아래서 가슴 속의 열망을 노래에 실어 토해내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금강호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동해의 짙푸른 바다는 라흠수씨의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동해 바다 어디에선가 무명가수였던 라흠수씨의 서러운 목소리가 떠돌고 있을지도.

“힘들었어요. 연예계는 실력보다는 돈과 인맥에 많이 좌우되죠. 돈과 인맥으로 인간의 가치가 매겨진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어요. 갈등을 많이 했죠. 이미 무명가수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하더라구요.”

1년여의 배회 끝에 라흠수씨는 또 한번의 좌절을 떠안고 당진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이 운영하고 있는 ‘부라보식당’의 일을 형과 함께 거들던 중 매몰차게 돌아선 옛 연인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라흠수씨는 우연히 김무스씨로부터 상록문화제 군민노래자랑에 나와달라는 초청을 받게 된다. 유명한 가수들과 한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관중들은 유난히 라흠수씨에게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때의 계기로 라흠수씨는 CNB충남방송에서 노래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윤세중씨를 만나게 된다. 윤세중씨는 라흠수씨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알아보고 여러 지역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해 무대에 설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발라드보다 트롯트가 매력적이에요. 가사가 쉽고 직접적이거든요. 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노래를 부를 때는 언제나 제 자신이 노래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진솔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야만 관중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죠. 사랑과 이별과 아픔과 슬픔과 기쁨을 제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그렇게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부르고 싶어요.”

한편, 라흠수씨는 10년째 섹스폰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에서 무명가수로 생활하며 배웠다고 한다. 현재 서해윈드앙상블(단장 박성민)의 단원이기도 하다. 금관악기의 매력을 일반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서해윈드앙상블은 금관악기를 사랑하는 사회인들의 모임이다. 서해윈드앙상블은 매년 12월이 되면 정기연주회를 갖고 있으며 CD로 제작된 앨범도 나와 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걸진 않겠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죠.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그러면 기회는 저절로 온다고 생각해요.”

현재 부모님과 함께 ‘부라보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라흠수씨는 가수에 대한 꿈을 계속 품고 살겠다고 말했다.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음악은 잊혀질만 하면 라흠수씨의 가슴을 두드렸던 것일까? 라흠수씨에게 다시 한번 가수로의 꿈을 실현시켜줄 기회가 올 것을 믿는다.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