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드리마일 사건, 소련의 체르노빌 사건은 계속해서 더욱 큰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원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원전은 맹신해도 좋을 만큼 안전한 것이 못된다는 것은 핵산업의 역사 그 자체가 증언하는 것이다.

40년대초 핵폭탄 개발에 가담하고 있던 수천명의 과학자들은 핵분열의 원리를 이용하되 한꺼번에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조절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양만큼만 얻을 수 있게 된다면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이 되어 주리라는 이상을 품었다. 사실 그 원리만을 두고 생각할 때 ‘핵은 인류가 발견한 제2의 불’이라는 중계장면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기를 검침하고 관리하는 이들에게 드는 봉급이 전기요금보다 비싸게 먹히는 시대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는 방송앵커의 언급은 앞으로 원전시대가 열리면 전기는 얼마든지 공짜로 쓰고픈 대로 쓸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낙관에 사로잡혔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서구에 유학했던 개도국 과학자들의 뇌리에 새겨진 그때의 인상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에게 ‘선진국이 되려면 하루빨리 핵에너지를 수용해야 한다’는 발상에 젖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낙관은 얼마되지 않아 어두운 먹구름에 쌓이기 시작했다. 1957년 윈즈스케일 원전에서 반경 100Km이상을 방사능에 오염시킨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이것은 드리마일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 가장 큰 폭발사고였던 것으로 이 사실은 당시의 수상이 국가기밀에 붙여 무려 30년이나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못했다.

60년대 들어서야 방사능의 치명적이면서도 치유할 수 없는 독성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퍼져가면서 안전성에 대한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원전은 점차 대용량으로 치달아 갔다. 73년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원전은 세계로 뻗어 나갔다. 방사능이라는 다스릴 수 없는 숙명을 은폐한 채, 그러나 그 이후인 79년의 드리마일과 86년의 체르노빌 사고를 고비로 그것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치명적 위험성이 드디어 인류의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79년 미국의 드리마일 원전에서는 가동을 개시한 지 고작 4개월만에 원자로 안의 냉각제가 단시간에 대량상실됨으로써 핵연료가 녹아 내리는 사고가 났다. 미국 대통령 사고 조사위원회 및 전력연구소 보고서는 ‘이 사고로 한 사람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으며 환경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공식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져 가고 있다. 벨연구소의 연구진은 ‘인구 1만명당 110의 비율로 암에 걸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의 자체조사에서도 10년 사이에 1백가구 4백5십명중 20명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7배 가까운 높은 발병률이다. 식물학자인 간켄교수는 드리마일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의 잎이나 꽃에서 5배 내지는 10배에 이르는 이상 비대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드리마일 원전에서 15Km 떨어진 하리스버그의 스티븐 리드사장은 사고가 난 지 10년만인 89년 “사고 당시 8시간 동안 작동되다가 멈춘 방사선 측정기는 1천 램을 가리키고 있었다. (1천 램의 방사능은 80~90%의 치사율을 가져온다) 측정기가 멈춘 뒤에 방사능이 얼마나 나왔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중장기적으로 주민들의 건강피해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언급함으로써 사고의 심각성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