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십자가에 기대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스름이 깔린 새벽, 밤새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찬바람이 가득한 어두운 거리 저 멀리로 누군가가 어깃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중년여인이었다. 여인의 가슴엔 두꺼운 성경책이 안겨 있었다. 새벽기도에 나가는 모양이었다. 신호등만 깜박이는 텅 빈 거리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마음이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는 거리를 아무렇게나 돌아다녔다. 그리고 비탈길을 올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폐부 깊숙히 들이마셨던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낡은 종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동이 터오는 동쪽의 하늘 아래 빛을 발하고 있는 붉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깜짝 놀라 잠시 주춤거렸다.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건, 목적지도 없이 그 새벽 그렇게 배회하게 만들었던 건, 어둠이 내린 동네를 홀로 지켰을 붉은 십자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두커니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기도를 올리며 울먹이던 성금순씨의 얼굴이 만월처럼 차올랐다. 두 번의 교통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박고 이제는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그의 아들 정재우씨도. 폐암말기인데다가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정신질환자가 되어버린 그의 남편 정시환씨도.

이사야 53장 5절, 비로소 찾은 답

전날 나는 그들을 만났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만났었다. 범상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하찮은 것들을 절실히 소망하고 있는 그들의 가난한 꿈을 만났었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품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만나는 동안 굳은살 하나 박히지 않은 나의 손이 너무도 부끄러웠기에. 나의 교만을 스스로가 참을 수 없었기에. 나의 욕심이 죄라는 것을 그들에게서 깨달았기에. 그 새벽, 십자가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내가 가진 것 없는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게 느껴졌던 이유를 생각했다. 그리고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와 책장의 구석에 꽂혀있는 성경책을 집어들었다. 빛 바랜 성경책의 표지에 허옇게 낀 먼지를 털어 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사야 53장 5절. 거기에 쓰여져 있는 구절은 내 고민의 장벽을 일시에 허물어뜨리며 단검처럼 박혔다. 그들 앞에서 모래알처럼 작게 느껴졌던 이유, 그 답을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들의 지독한 이야기

다음부터 읽게 될 얘기는 전혀 나의 주관이 개입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기술했을 뿐이다. 그들이 걸어온 지독한 길을 둘러대거나 꾸며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만나면서 받았던 느낌을 당신 또한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 그러나 나는 조심스럽게 소망한다. 당신의 가슴에도 그 무엇인가가 단검처럼 박히기를.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하찮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기를.

정재우(24). 98년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다리뼈가 으스러졌다. 다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무릎부터 정강이까지 기다란 철심이 박혀야 했다. 01년 2월25일 그가 탄 차가 마주오던 차와 부딪쳤다.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40일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겨우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몸의 왼쪽 신경이 충격으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읍내의 푸른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는 신경재활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입원해 있을 뿐이다. 의사는 7년이라고 했다. 그의 신경이 되살아나기까지 7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현재 그의 왼쪽 다리는 오른쪽에 비해 짧아진 상태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신경이 되살아나도 그는 걷지 못할 거라고 했다.

정시환(62). 정재우씨의 아버지다. 그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잡부였다. 아들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그는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다. 아들의 과실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감기몸살기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그는 감기약을 먹고 일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현장에서 쓰러졌고 급히 도시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폐암말기. 그가 몸살감기라고 여겼던 그 병은 바로 퍼질 대로 퍼져나간 암덩어리였던 것이다. 의사는 그가 먹은 감기약이 암세포의 확산을 더 부추겼다고 했다. 그는 폐와 가슴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후 그는 정신질환자가 되었다. 정신과 의사는 판정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그 스트레스가 너무 커 정신병이 되었다고. 현재 그의 암세포는 뇌까지 퍼져있는 상태다.

성금순(49). 낮에는 폐암말기의 남편을, 밤에는 반신불수의 아들을 돌보고 있다. 44만1천원. 기초생활보장 1종 대상자로 그에겐 매달 그만큼의 돈이 지급된다. 아들과 남편의 병원비로 빚진 돈은 모두 7천만원. 44만1천원을 하나도 쓰지 않고 갚아나가도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는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너무도 가난하다. 남편에게 앞으로 10년간의 삶이 허락되는 것. 그리고 꿈에서라도 아들이 걷는 모습을 보는 것.

생채기 두둑한 가슴이 내는 흐느낌

성금순씨는 원당감리교회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도에 열중하는 그의 젖은 음성이 십자가가 매달려 있는 맞은 편 벽에 부딪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그것은 생채기 두둑한 가슴이 내는 안타까운 흐느낌이었다. 어딘지 숙연해진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가슴에 손을 모았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흐느낌은 고요한 마음의 심연에 팔매질을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의 여린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걷지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무엇일는지. 폐암말기인 남편의 남은 생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여인의 가슴은 얼마나 검을는지. 그의 가난한 꿈이 영영 그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주지나 않을는지. 바닥에 떨어진 그의 눈물이 봄볕을 받아 인광처럼 반짝였다. 기도를 마친 그는 쓱, 투박하게 눈물을 닦아내며 돌아앉았다.

“주님한테 기도했어요. 그리고 응답을 받았죠. 꼭 고쳐주신대요, 우리 재우…….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회개하면 재우는 언젠가 제 발로 걸어 세상에 나가 밝은 빛을 얻으며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들을 위해 감기약을 먹어가며 암세포를 기우던 정시환씨는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다. 농약병을 앞에 두고 눈시울이 붉어졌을 정시환씨. 그를 죽음의 유혹에서 구해낸 건 서울에서 아들을 돌보고 있던 성금순씨의 전화와 마을주민의 방문이었다. 그 두 번의 우연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사람. 그의 굳은 얼굴에서 죽음을 넘나들었던 절박한 흔적이 읽혀지는 듯했다. 정시환씨는 어둠을 견디지 못한다. 잠을 잘 때도 텔레비젼이나 형광등을 켜놓고 잔다. 그리고 한밤중에 무엇에 홀린 듯 부스스 일어나 집안을 뒤적이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린다.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려는 그의 심정은 무엇일까? 혹, 이미 그의 가슴은 시커먼 재만 가득한 것은 아닐까……? 그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은, 세 가족이 오붓이 모여 밥상만 같이 해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 때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건지도. 그런 이유로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것이리라.

늦은 오후, 성금순씨와 함께 푸른병원으로 향했다. 정재우씨는 병상에 누워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는 정재우씨의 마음 또한 시퍼런 멍만 가득할 것이다. 모르겠다. 그 허공에 무엇이 있는지. 그 무엇이 정재우씨의 눈길을 잡아끄는지.

진정으로 바라는 것……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정신질환자가 된 아버지, 아버지가 폐암에 걸린 것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반신불수의 아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작은 체구의 여인. 만약 당신이 그들의 얘기를 읽으며 안도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들의 얘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당신이 느꼈을 그 안도감은 그들에겐 가혹한 잔인함일 수도 있으므로. 그런 이유로 며칠동안 망설이기만 했을 뿐 그들의 얘기를 한 자도 적어내지 못했었다. 그들이 가엾다거나 당신이 슬퍼지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가령, 저마다 누리고 있는 행복이 그 누군가의 불행으로 인한 것임을 단 한번만이라도 아로새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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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