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본사를 비롯한 전국 30여개 지역신문의 모임인 (사)바른지역언론연대에서는 2001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지역신문과 지방자치 현황을 둘러본 데 이어 올해에는 최종길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6명이 참가한 가운데 7월29일부터 10박11일의 일정으로 유럽연수를 실시했다.
이번 연수에서는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지역신문사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스위스 루체른, 인터라켄과 프랑스 파리의 문화자원 등을 견학했다.
독일연수에는 에어크라트시의 민원국장으로 있는 크뤼거씨가 일정을 함께 했고 한국언론재단 독일통신원인 심영섭씨가 통역을 맡아 수고해 줬다.
① 독일의 지역신문 " 손은영 기자
② 독일의 지방자치Ⅰ " 유종준 기자
③ 독일의 지방자치Ⅱ " 유종준 기자
④ 독일의 생활문화 " 김정진 기자
⑤ 스위스·프랑스의 문화 " 이희철 기자
녹색천지의 세상에 공존하는4개의 문화
악성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자연경관
독일을 떠나 드디어 스위스로
독일의 뒤셀도르프 중앙역에서 밤열차를 타고 유럽의 중앙, 스위스로 향할 때 일행들은 약간의 설렘과 들뜸으로 밤늦게까지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를 마셨다. 독일을 떠나 스위스로 향한다는 건 일행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배워가야만 하는 연수의 짐을 벗고 조금의 불안함(통역인이 없었으므로)을 동반한 여행을 의미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행이란 모름지기 모험과도 같은 야릇한 흥분을 자아내기 마련이니까.
소주와 함께 한 밤열차의 낭만은 어느덧 새벽과 함께 슬그머니 물러나 앉았고 일행은 빈사의 사자상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루체른(Luzern)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된 숙소에 짐을 풀고 스위스를 만끽하기 위해 당당하게 나선 첫날,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든 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언어였다. 밤기차에서 승무원은 비교적 익숙한 영어를 썼던 터였지만 스위스에 도착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유럽의 배꼽, 스위스
상점에서는 독일어를, 숙소에서는 다시 영어를, 음식점의 메뉴판에는 불어와 독일어가, 일행이 함께 탄 유람선의 커피 파는 아주머니는 로만슈어를, 그리고 이탈리아어도 종종 귀에 들려왔다. 연수단의 인솔을 맡은 최종길 발행인은 오로지 인솔자가 된 죄로 한국식 발음을 왕창 가미한 영어를 섞어가며 손짓과 발짓, 때론 몸짓으로 언어소통을 하느라 곤혹을 치러야 했다.
알고 보니, 스위스엔 네개의 국가 공용어가 통용되고 있었다. 독일어(인구의 약 65%가 사용), 불어(18.4%), 이탈리아어(9.8%), 로만슈어(0.8%)가 그 언어들이다. 유럽의 중심지인 스위스는 그만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 언어들은 스위스의 문화적 지평을 같은 언어를 쓰는 인근의 주변 국가들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언뜻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그 언어들은 스위스 내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3대 문화권의 다채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기반이 됐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벤트와 축제가 끊이지 않는 유럽의 배꼽, 스위스엔 그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문화가 제 각각의 색깔로 한데 어울려 있었다.
만일 산들에게도 고향이 있다면...
스위스에서의 이튿날, 일행은 루체른에서 인터라켄(Interlaken)으로 이동해 알프스 산맥의 여러 봉우리 중 유럽의 정상이라 일컫는 융프라우(Jungfrau)로 향했다. 전동기차를 타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도의 기차역인 융프라우 역(3,454m)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론 거대하고 웅장한 산맥이 알몸을 드러낸 채 일행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고대의 빙하와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절벽은 사람을 사로잡을 듯 압박해왔고, 그러면서도 구릉지와 언덕의 목초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안식처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거대함과 두려움, 포근함과 아늑함이 공존하는 그곳은 마치 지구상의 곳곳에 실핏줄처럼 퍼져나간 수많은 산들의 오래 전 고향처럼 느껴졌다.
내내 지상을 달리던 기차는 해발 2,320m에서부터 캄캄한 굴로 들어갔는데, 암석의 산을 뚫어 만든 기찻길이었다. 그러니까 2,320m에서부터 융프라우 역인 3,454m까지 1,000m도 넘는 구간을 암석 뿐인 산을 뚫어 길을 낸 것이었다. 세계적인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풍부한 스위스가 자국만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얼마나 관광기반산업에 투자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최소한의 개발, 최대한의 보존
단 3일이었지만 일행들은 스위스를 떠나기가 무척 아쉬웠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스위스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있었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동안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일행들을 의아하게 만든 건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이 없다는 것, 그리고 도로와 인도를 제외하곤 온통 목초지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으로 들어섰을 때는 무뚝뚝한 사각형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관광지에선 기차역과 커다란 상점을 제외하곤 천편일률적인 콘크리트 건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녹색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초원의 여기저기에 마치 자연의 한 조각물인 듯 서 있는 목조주택들은 아담하고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런 꾸밈없이 맑은 호수에 유람선을 띄워놓고 웅장한 산에 기찻길을 낸 것이 개발이라면 개발일 뿐 놀이공원이나 유흥업소, 더욱이 우리나라의 내노라 하는 명소에는 꼭 자리잡고 있는 러브호텔 같은 악성 조미료들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최대한의 보존, 최소한의 개발, 그것이 스위스가 세계적 관광명소로 성장한 이유였던 것이다.
해마다 피서객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는 난지도 해수욕장, 조금씩 오염되고 있는 왜목 등을 생각할 때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되는 대목이었다.
도시를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들
그 그늘에 가려진 파리의 이면
살아있는 과거의 건축물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그 요염한 몸매와 분위기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에펠탑 근처에는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 풀밭에 누워 어두운 풍경 속에 황금빛을 내는 에펠탑을 올려다보면 마치 천상의 황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심판의 장소로 사용됐던 노틀담성당은 고딕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빅토르위고 가 쓴 소설 ‘노틀담의 꼽추’에서 꼽추인 콰지모도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달래며 울리곤 했던 거대한 종을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절대군주제의 사치와 향락을 드러내는 조형물 베르사이유 궁전과 몽마르뜨 언덕에 위치한 비잔틴 양식의 사크레쾨르 사원, 그리고 모나리자가 소장돼 있는 루브르 박물관 등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이 파리의 곳곳에서 빛을 내고 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실제로 사용되고 있거나 여행객들에게 그 속을 일일이 개방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과거 속에 묻혀졌을 수도 있었던 그 건축물들을 현재의 터로 삼아 그 기반 위에 미래를 엮고 있는 것이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의 이중성
파리에 도착한 첫날, 이국적인 풍경과 예술적인 건축물에 앞서 일행이 마주쳐야 했던 건 지저분한 지하철이었다. 때때로 악취가 풍기는 지하철은 노선이 매우 복잡해 목적지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고 협소한 통로와 낡은 조명은 멋과 패션과 낭만으로 알려진 파리에 대한 첫인상을 어둡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내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찾아볼 수 없었고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이동시설도 전무했다. 협소한 통로와 계단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지하철은 장애인에게는 한번도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금기의 처녀지 같았다.
으레 명소에는 기념품을 파는 잡화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일행들을 의아스럽게 만들었던 건 기념품이라고 하기에도 마땅찮은 조잡한 물품을 파는 사람들이 죄다 흑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고무줄 동력으로 종이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가는 장난감 새와 끈으로 엮어서 만드는 팔지, 그 외에 싸구려 잡화와 기념품을 파는 흑인들이 어느 명소에나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의 그늘에 가려있는 흑인들에게서 파리의 이면을 읽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혼돈과 무질서, 혹은 일탈과 자유로움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행들은 붉은 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붉은 불이 켜졌더라도 차만 없으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도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 휩쓸려 잠시 후 머뭇머뭇 무단횡단을 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4차선 도로를 제외하곤 파리의 어디에서나 무단횡단의 법칙은 적용되고 있었다.
파리에서의 이튿날, 1시간여를 기다려 노틀담성당에 올라 파리의 시내를 만끽하고 내려와 잠시 다리를 쉬는 사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10여명의 청년들이 막 도로를 점거하고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컵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놓고 빠른 속도로 컵과 컵 사이를 지나며 여러가지 기술을 선보였는데, 그곳은 비교적 한산한 도로의 한 가운데였다. 그곳에 있던 여행객들에겐 즐거운 볼거리를 선사했겠지만 진입하려던 차량들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행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청년들의 공연이 소나기가 내리기까지 계속된 걸로 보아 아마도 종종 그곳에서 자신들의 묘기를 선보이는 모양이었다.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처음에는 혼돈과 무질서로 보였으나 나중에는 그런 일탈과 자유로움을 허락하고 즐기는 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