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정부는 오래된 재고쌀을 풀어서 가축사료용으로 전환해 보겠다는 발표를 했다.

적정 보관량을 유지하려는 고육지책으로 생각하지만 그후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태풍 ‘루사’는 귀한 주식을 놓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너무 쓰라리게 주고 지나갔다.

아수라장이 된 강원, 경상도 지역 때문에 웬만한 피해지역은 말도 못했고 중심피해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우리 지역의 불행은 며칠후에 황당하게 나타났다.

중·만생종 벼 출수기와 맞물렸던 이 기간에 연녹색의 벼이삭이 허옇게 변하고 한두밤 자고나니 검은 들판이 되었다. 갯바람 맞아 백수, 흑수가 된 것이다.

힘없는 농민의 생명줄인 쌀문제를 놓고 근본대책도 없이 요리조리 굴리다가 자연으로부터 호되게 당했다.

일조량 부족, 태풍, 결실기 저온까지 겹쳐 올해는 농림부 조차 10%이상 감수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농민들은 20%이상 줄어 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예년보다 벼수확은 물론이고 제현율도 형편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변했어도 쌀은 우리의 엄연한 주식이고 30억이 넘는 아시아인들이 매일 쌀로 끼니를 잇는다. 입가진 사람들은 쌀이 중요하다고 열심히 말은 잘한다.

이러한 쌀이 국내 소비량 이상으로 생산되고 거기에 해외로부터 값싼 쌀이 밀고 들어오니 문제가 불거지는데 우리의 대책은 아직까지 약정수매, 직불제, 휴경제 정도에서 맴돈다.

그러나 이런 방안마저 아랫돌 빼서 위에 얹는 수준으로 문제점 투성이다.

일반판매와 약정체결사이에서 정확한 기준이 없어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농민들은 늘 고민한다.

직불제도 그렇다. 쌀값이 점점 하락할 것이라는 기조 아래 농민들은 제꼬리 잘라먹는 기분이고 정부 부담금은 수매예산을 축소해서 충당한다니 좋아할 농민이 어디 있을까.

휴경제 도입은 일본이나 대만의 예로 보더라도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 아무리 한시적 제도라고 해도 결국 수급조절을 위해선 항구적 제도로 변할 것이고 임차농지의 회수와 전업농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거기에다 당장은 농사짓기 어려운 한계농지선에서 그칠 것이니 쌀감산 효과는 미미할 게 뻔하다.

이런 이유의 불만으로 요즘 대선정국과 어우러져 농민단체의 강한 반발이 심하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협상중단을 요구하며 길을 막고 항의하고 추수가 끝나면 전국의 농민들이 함께 모여 농정에 대한 규탄대회를 가질 것이다.

우리 농민도 품질고급화, 차별브랜드, 민간유통기능강화, 첨단광고 등 할 일이 많은데 옛날 구호처럼 싸우면서 일해야 그나마도 중산층에 낄 확률이 높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