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산·당진·태안·아산·예산·홍성·보령·서천 등 충남 서북부지역들은 달라진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공장들이 대거 이곳으로 이전하는가 하면 도로 곳곳에는 개발의 함성이 요란하다.

필자는 서산이 고향이라 한 달이면 2~3차례 이곳들을 방문하곤 하는데, 갈 때마다 변모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바야흐로 서해안시대가 도래됐음을 실감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국토발전의 중심이었던 경부축(京釜軸)이 서해안축(西海岸軸)으로 이동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또한 동북아 및 환황해권의 중심지역이 다름 아닌 이들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고향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지역들이 과거 내포라는 이름의 문화권역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숨은 보고임을 알았을 때 내가 고향에 대해 아직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

가야산 앞뒤의 10고을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내포’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내포란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휘어 들어간 부분, 순수한 우리말로 [안개(內浦)]’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충청도 서북부지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내포에 대해 택리지(擇里志)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伽倻山)이 있는데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있는데, 가야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맥이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

택리지에서 일컫는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은 홍주·결성·해미·태안·서산·면천·당진·덕산·예산·신창 등이다. 이는 오늘날의 충남 서북부지역인 서산시와 예산·당진·홍성·태안군과 아산·보령시의 일부에 해당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洪州牧)이 관할하던 서천에서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볼 때, 내포지역은 충남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 같다.

내포지역은 바닷길을 통하여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일찍부터 교류가 시작됐다. 서산마애불의 전통은 그 경로를 통하여 소개되었고, 내포교회의 역사도 마카오와 내포를 잇는 뱃길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염시수(魚鹽柴水)로 대표되는 농·수산물이 풍부해 살기가 넉넉해 한반도에서 가장 인심이 순후한 곳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240년 전 이중환은 이곳을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임진과 병자의 큰 난리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내포문화권 본격 개발

충남도는 이런 천혜의 자연자원과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내포권에 대해 특정지역 지정 및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충남발전연구원도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어떻게 하면 내포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성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충남도는 정부와 협의하여 내년부터 10년 동안 1조원 이상을 투자해 집중 개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내포권은 새로운 시대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 옛날 이중환이 말했던 살기 좋은 고장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내포권 지역 8개 시·군이 '내포권행정협의회'를 구성했다. 행정협의회는 특정지역 지정 및 개발 계획 확정은 물론, 서산 공군기지 민항기 취항 건의, 산불진화용 헬기 공동 구입, 시·군 지역 간 공동개발 등 내포권의 위상정립과 공동발전을 위해 공조체계를 구축해 나간다고 한다. 내포문화권 개발에 맞춰 이 협의회의 구성을 환영하며 우리 모두 함께 내포문화권 개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