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지 아니하여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名山)이고,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명수(明水)이다.”
살기좋은 내포지역에는 이름난 높은 산과 소문난 강은 없지만 개방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던가? 이런 내포지역 문화의 다양성과 선진성은 역사적 전환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는 온상이 되었다.
조선 후기 성리학계의 대표적인 논쟁이었던 호락논쟁(湖洛論爭), 즉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을 촉발시킨 남당 한원진과 외암 이간은 홍성 결성면 남당리와 아산 송악면 외암리에서 태어난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중의 하나였다. 천안이나 아산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을 들러보자. 그곳은 ‘전통이 살아있는 고향마을’로 우리 선인들의 삶과 지혜가 그대로 숨쉬고 있다.
학문과 예술의 大家 즐비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손에 잡았던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1517~1578)은 보령의 청라면 장산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이지함은 여말의 학자인 이곡·이색 부자의 후손으로 이연경·서경덕의 학통을 이은 16세기 호서지역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또한 근대지향적인 학문인 실학의 대가들이 내포와 인연을 맺고 있으니, 성호 이익의 집안이면서 그의 실학을 이어받은 일군(一群)의 학자들이 예산군 고덕면에서 살았다. 한국의 독특한 서체인 추사체와 금석학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 가문은 조선후기 내포지역의 명문가였으니,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의 추사고택을 건립한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였다.
추사의 학문은 고증학·금석학·사학·문자학 등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분야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하여 시·서·화 일치라는 문인 취향에 충실하면서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서체를 창출하였다.
추사고택을 한번 가보면 시간의 벽을 넘어 그 분의 숭고한 예술정신을 직접 느낄 수 있다. 그는 단순히 학자 또는 한 예술가를 뛰어넘어 시대의 전환기에 산 지식인의 기수이자, 신문화를 가능하게 한 선각자 자체였다.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도 내포인
내포사람들은 서학과 천주교가 전래될 때 그 수용에도 앞장섰으니 ‘내포의 사도’라고 일컬어지는 이존창에 의해 내포교회가 창설되었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은 당진군 솔뫼에서 태어났으며,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버린 무명의 신도들이 ‘신앙의 묏자리’라고 일컬어지는 해미의 여숫골에 묻혀 있다.
내포사람들은 19세기말·20세기초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해 올 때, 불굴의 투지로 이에 맞서 저항하였다.
의(義) 문화권인 내포에서는 동학운동과 의병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났다. 김좌진 장군은 1907년 고향에서 가산을 정리하여 호명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교육하였으며, 기호흥학회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6년 광복단에 가담하여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총사령관이 되었다. 1920년 10월 청산리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이범석 등과 함께 접전, 3일간 10여차례 전투에서 일본군 3천3백명을 섬멸하였다. 이를 ‘청산리전투’라 하여 봉오동전투와 함께 독립전쟁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히고 있다.
충절과 충의의 인물 많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난 만해 한용운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이끈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3장을 작성하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민족혼을 일깨우려고 노력하였다. 52세 때 ‘불교’라는 잡지를 인수하여 불교의 포교에도 노력하였으며, 특히 고루한 전통에 안주하는 불교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승려의 자질향상, 기강확립, 생활불교 등을 제창하였다.
항일투사 윤봉길은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도중도(島中島) 출신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 받아 식민지노예교육을 배격하면서 학교를 자퇴한 후 농민계몽, 농촌부흥운동, 독서회운동 등으로 농촌부흥에 전력하였다. 그리고 1932년 4월28일 일제의 천장절 겸 전승기념축하식장에서 폭탄을 투척 대한남아의 기개를 만천하에 알렸다.
내포지역은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이 예술 혼을 지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일제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수했던 월남 이상재는 서천군 한산면의 인물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는 ‘상록수’의 저자 심훈 선생도 내포가 배출한 걸출한 인물중 하나이다.
자 지금 함께 떠나자. 내포에 가서 어떻게 내포인들이 한국정신사의 새벽을 열었는지 함께 공부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