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테러는 어떤 명분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테러는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응징한다고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더욱 안된다. 악순환만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고 김선일씨를 추모하는 물결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의 죽음이 전쟁과 테러가 종식된 대지에 평화의 씨앗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선일씨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보통가정의 말 잘듣는 평범한 아들이었으며 이라크에서 직접 목격한 참상 앞에 부시과 미국정부를 혐오할 줄 아는 똑바른 이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요컨대 목이 베이고 피가 튀기며 고통스럽게 죽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소박하고 선량한 인생이었던 셈이다.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었던 김선일씨가 싸늘한 주검이 되면서 온 나라가 충격과 분노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테러 집단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며 파병을 강행해야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정부와 국회의 추가파병 결정이 그의 죽음을 불러왔다며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지 전에 파병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테러 집단을 응징하기 위해 최정예의 전투병을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정책 결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테러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추가 파병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50명의 국회의원들은 시민사회단체와 힘을 모아 파병 재검토 결의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추가 파병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투병을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은 냉철한 현실 인식과 이성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화법과 흡사한 것으로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다면서 오히려 보복의 악순환과 테러를 현실화시키고 있는 미국의 오류를 한국도 답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우선 파병 철회가 결코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파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부당성과 이에 대한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 세계의 강력한 반발 그리고 정부가 파병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평화, 재건 활동의 허구성 및 파병 강행시 유혈 사태 및 한국에 대한 테러 공포의 확산에 근거를 둔 것이다.
김선일씨가 죽은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 집회가 한창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누군가 파병의지를 굽히지 않고 국익을 운운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국익을 필요로 하길래 우리나라는 젊은 그를 희생시켰는가? 우리 정부에게는 그를 살릴 수 있는 24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24시간 내내 시종일관 정부와 외교부가 한 말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 파병의 강행이었다. 이것도 국익인가? 국제사회에서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것인가? 테러범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인가? 한 젊은이를 죽게 만든 것은 어떤 국익인가? 이번 김선일씨 참사는 우리가 추가파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준 사건이다. 아랍권 전역에서 미국은 증오의 대상이다. 파병이 재건 지원을 위한 것이건, 의료복지를 위한 것이건 그건 이제 알 바가 아니다. 이미 이라크는 한국을 적으로, 미국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63빌딩이나 잠실 야구장까지도 테러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 그로 인해 무고한 피를 흘릴 수는 없다. 우리는 이라크인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할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로 미워하다 보면 더 큰 불행이 생기고 제2의, 제3의 희생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국익보다 더 중요시 할 때 국민은 국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