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김태숙

어떤 날은

너희들 서 있는 발 아래 그냥

한두해 거름으로 푹 썩고 싶구나

사는 날이 많을수록 야금야금

잠 뒤척이는 수고로 너희들 살 마르게 하고

어차피 거름으로 썩을 내 육신과 마음조차

기름기 없이 말라가게 하느니,

오늘 밤 너희들 자는 곤한 잠 밑에

아직 싱싱한 내 뿌리

더 말라붙기 전에 고이 묻어두고 싶구나

차라리 너희들 연한 살 속에서

실한 거름 한가지로만 살다 가라하게,

너희들 연한 잠 바라보는 내 눈과

거름이 다 되지 못하는 내 몸과 마음의

부질없이 힘겨운 이 겨루기를

이제는 그만 거두어 버리게

그런 날은 고맙게도

잠속에까지 따라온 산이 내게

이르는구나

어차피 대개의 날을 우리는

햇살을 등진 산비탈에서

어둠이 어둠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고,

서둘러 꽃 피었다 지기도 하고

진자리 밑이 썩고

무모한 꽃잎들은 바람 쫓다 객사도 하는

화려한 등성이 반대편을 우리는

못본 척 하다 그만 잊고 살아왔다고,

마를 날 없이 눈 나리고 비 나려

눈비 간 뒤에도 질펀한 흙탕길에

매일밤 돌아와 씻는 일이 어쩌다

당연한 고행이 된 산그늘에선

오래 묵어도 거름 하나

실하게 썩지 못한다고

썩기도 전에 삭아서 무른 눈물 뿐

아무것도 되지 못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