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이나 속은 심산인 산해절승의  아름다운 산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대간상에 위치하나 이곳은 유일하게 산과 바다가 한곳에 어우러진 반도이며 해변가를 따라가면 산인지 평야인지 구분이 가지 않은 유순한 산들이다. 그러나 변산반도에 우뚝 선 진주 같은 산 능가산(590m)은 그 깊이가 더할수록 범상치 않은 수려한 경관과 겉보기에는 야산이나 속은 심산인 산해절승의 아름다운 산이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천관산과 더불어 호남의 오대 명산중의 하나이며 밀도 높은 산세는 관음봉, 세봉, 옥녀봉, 비룡상천봉, 의상봉, 쌍선봉이 핵심 원형을 이루니 안쪽의 내륙산악은 내변산이요 그 바깥쪽은 외변산이니 국립공원 중 다기능 공원으로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빼어난 절경과 다채로운 풍광을 간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쌍선봉을 주봉이라 하지만 정작 주봉은 관음봉이라 할 수 있으며 관음봉에서 뻗어 내린 지능선을 따라 천년태고의 고찰 내소사가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1988년 마지막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산세가 수려하고 골이 깊다 보니 직소폭포, 선녀탕, 가미소, 와룡소와 채석강과 같은 수많은 절경이 도처에 산재하여 있다. 국립공원 수준에 못 미치는 듯 보이지만 암팡진 비경은 깊이가 더해질수록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다.

내소사를 오르는 전나무 숲을 지나 재백이 고개 직소폭포와 남어치 매표소를 향하는 일반적인 산행코스를 버리고 원암 매표소를 초입으로 잡아 올랐다. 어제 내린 흰눈이 비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지는 임도를 20여분 오르니 낙조대와 재백이 고개 안부에 이른다. 고개 우측 길을 향하니 산 사면으로 이어지는 길은 처음과는 사뭇 다른 급경사를 이루며 깎아 지른듯한 암반과 깊은 골은 이제 명산의 면목을 보여주는 듯 만만치 않은 경사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다시 20여분 가량 오르니 오십 여평에 이르는 마당바위에 이르고 멀리 남면을 바라보니 쪽빛 바다가 시원스러운 풍광으로 다가서며 바다는 햇살을 받아 은빛 물결이 눈부신 장관으로 펼쳐진다.

마당바위에서 눈 덮인 경사길을 내려서다 다시 올라서니 재백이 고개다. 안부에서 바로 내려서면 내소사 전나무 길이다. 그러나 북쪽 길을 따라 오르니 비교적 완만한 길이 잠시 이어지다 관음봉 후 사면에 이르니 하늘높이 치솟은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깎아지른 듯 솟아 나무가 빼곡이 들어선 계곡은 골이 깊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암봉은 넘어질 듯 밀어올 듯한 산세가 주는 위압감은 전혀 또 다른 산에 오르는듯한 야릇한 정감을 준다. 암반허리를 안고 약간 뭉긋한 봉에 올라서니 유난히 큰 무덤에 이른다. 그곳을 돌아 5분 거리의 관음봉에 올라서니 나지막한 산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뭉긋뭉긋 솟아오른 암릉은 조망이 뛰어나다. 불꽃처럼 솟구친 바위길을 오르내리는 사이 반도일원의 풍광은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특히 산릉이 물결치듯 잔잔히 밀려오고 넘쳐 날듯한 부안 앞 바다가 푸른 모습으로 다가서 탁 트인 풍광을 연출하며 일망무제의 경관이 펼쳐진다.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세봉으로 향하니 관음봉에서 시작된 등산로는 눈 덮인 암반으로 연이어진다. 이 능선길이 능가산의 백미인 제일의 등산로다. 능선은 내소사를 품안에 두고 타원형을 이루며 뻗어나가다 내소사 초입에 그 여맥을 묻는다.

세봉 정상에 이르니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는 싱그러운 봄날을 방불케 하며 하산길이 다가오니 못내 아쉬운 마음은 허전하게 느껴지며 능선을 가로질려 내려서니 산 중턱에 청련암자가 자리하며 내소사에서 시작된 임도는 급경사를 따라 이곳에 이르며 계곡은 깊고 경관 또한 심오하다. 한적한 계곡을 따라 내소사에 이르니 속세의 온갖 고뇌와 상념들을 일순간에 잊을 수 있는 스산함이 파고들며 고풍스러운 백제 특유의 날렵하면서도 사뿐히 고개든 추녀의 곡선미와 배흘림 기둥은 단아하면서도 완벽한 조형미 넘치는 경관을 이룬다.

내소사를 감싸안은 세봉 능선은 구름이 둘러친 듯 서있고 귀봉의 수려함이 마치 장벽을 쌓아놓은 듯 급격하니 명지를 찾아내는 선인들의 안목에 찬사를 보내며 경내를 돌아서니 짙푸른 전나무 숲길 행렬로 들어서니 음습함과 소소함이 느껴지는 추억이 감도는 길이다. 소곡이 쌓인 흰눈은 길따라 뻗어나가고 그 길을 지나려면 불현듯 옛 추억의 아련함이 떠오르는 길이다. 어느새 바람은 그윽한 전나무 향기를 싣고 콧등을 스쳐간다. 작으면서도 커 보이고 커 보이는 듯 하면서도 작아 보이는 오묘한 비경의 능가산은 명산의 정수만을 뽑아 한곳에 모아 놓은 듯, 발길 옮길 때마다 펼쳐지는 점입가경은 험준하면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평온함을 주는 잊지 못할 산이다.

박대희 당진산악동우회 회장

2004년 12월 21일 변산 능가산 산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