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당진에 ‘당진시’라는 글귀가 보이기 시작했다. 육교에 설치된 ‘일하는 당진시’나 공공장소의 쓰레기통에 붙어있는 ‘당진시’ 구호 등을 처음 볼 때는 잘못 인쇄됐나 의심하기도 했겠지만 당진군의 의도적인 사용으로 인해 이제 군민들은 당진군인지 당진시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시가 됐어야 하는데 아직 군에 머물러 있다든지 아니면 곧 시가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당진시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여론조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던 초기단계부터 적극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한낱 치기나 의지의 표명정도로 생각한 것은 참으로 후회되는 일이다.

당진시 추진에 대한 논의가 처음 제기될 때부터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시 승격 이후 달라지는 점들에 대해 군민들이 제대로 알도록 홍보함으로써 군민들 사이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난 후 당진시를 거론해야 한다고 발언해왔다. 그러나 공청회(?) 한번 개최하고는 곧바로 당진시 추진위원회라는 민간단체를 발족한 이 상황에서는 당진군과 당진시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도 성역에 도전하는 불경스러운 일로 느껴지고 있는 실정이다.

당진군은 시 승격에 관한 논리를 개발하고 그 논리로 군민들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당진의 공간과 자연여건 하에서 얼마의 인구와 경제규모가 삶의 질에 최적이며 시 승격이 과연 주민에게 어떠한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통해 군민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군민은 지배나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당진군이 지금 이 시기에 2008년으로 시기를 못박아 당진시를 추진하는 것은 목적도 순수하지 못하고 방법도 온당치 않다.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자기 최면에 다름이 아니다.

작금의 당진군의 사태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와 다를 바가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돌아다녀도 각자 자신의 눈만을 의심하지 실제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침묵을 통해 소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 힘으로 임금님은 자신이 아주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그 옷값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당진시가 될 조건이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득실을 따져 볼 일이다. 또 지금 시가 되는 것이 지역적으로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당진군 여건에 합당한 지원을 해 줄 것을 국가에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해내는 것이야말로 지역 균형발전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구집중과 자원의 집중을 해결하는 방안이다. 시가 되는 것이 당진군에 득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시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나는 우리 지역이 이웃과 더불어 살며 자연과 사회적 약자를 소중히 여기는 지역공동체가 되길 희망한다. 나는 한번도 군민임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