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으로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와 학은 아니지만 백로라도 넉넉해서 마음이 모자라는 대로 풍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내 주위는 새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마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인가 지나면서 들리던 뜸부기 소리마저 사라져 버리고 뜸부기는 전설 속의 새로 변한 듯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서울 가신 오빠는 뜸부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박씨 물고 오던 제비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져서 우리 동네에는 박씨를 물어다 줄 흥부가 살고 있지 않은가 하여 두렵습니다. 그나마 매년 찾아오는 뻐꾸기가 고맙습니다.
갯벌 또한 개발이라는 논리에 의해 사정도 모르게 없어져 갔고 자손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던 무진장한 자연의 창고는 일시적인 보상이라는 달콤함 속에 사라져야 했고, 보상금이라는 마약은 주민 서로간의 반목과 불신, 그리고 편법만을 키웠습니다. 저것만이라도 남았으면 하던 당진지역의 마지막 갯벌이라고 할 수 있는 행담도 근처의 바다도 지금은 권력의 비리의 힘으로 모두 메워져 가고 있습니다.
갯벌이 줄어들면서 없어져 간 것은 바닷가 마을에 남아있던 당집입니다. 물고기를 잡지 않으니 동네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사라질 뿐만 아니라 이제는 생활에서 절실하지 않은 기원(祈願)들 뿐이라서 빌어 구하던 청원을 주위의 모든 생각에서 정신적으로 잃어버린 것을 뜻합니다. 그냥 그것은 동네 ‘마을의 축제’로 남아 있으면 좋을 것이 그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쾌적하고 안락하게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은 소수의 의견도 수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본이 무시당한 채 항상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 슬프기만 합니다. 행담도 근처에 들어선다는 골프장은 과연 지역 주민에게는 얼마나 유익할까 하는 의문이 갑니다.
아산만 방조제가 축조되고 삽교천방조제가 완성되면서 모두들 당장에 부자라도 되는 듯 기뻐했습니다. 농사 지을 땅이라도 생기는 듯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회스럽게도 지난날부터 살아오던 토박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기초생활이야 모두들 향상 되었으므로 지난 날과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당진이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공장과 발전소로 바뀌어 간지가 15년도 넘은 지금 우리의 아름다운 고향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공해와 쓰레기와 이권개입과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야심만 가득히 찬 것 같습니다. 서울을 몇 시간 빨리 가는 것이 당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장과 발전소가 들어서고 철강공장과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는 것이 우리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산업화된 도시가 되어야 잘 산다고 말입니다. 철강공장이 증축되고 인구가 15만이 넘어 시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올까요? 우리에게는 울산이나 포항이라는 도시들이 표본으로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바라건대 한진 앞바다 영웅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겨울철이면 볼 수 있는 은빛의 동어와 숭어, 계절이 되면 놀이삼아 잡을 수 있는 바지락이라도 계속해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설설 기어 다니는 작은 게들의 움직임도 느긋한 마음으로 마냥 보고 있을 수 있는 여유가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흔하던 모든 것이 사라져 가면서 마음은 깍쟁이라는 서울 사람보다 더 약삭빨라져 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쓸쓸히 퇴장해야 하는 당진 남사당패의 마지막 배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만이고 그것이 나의 잘못된 판단이라면 좋겠습니다.
권건오
E-mail : fuoco@catholic.or.kr
말기 폐암으로 머리에도 퍼져서 1개월의 생존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30년을 넘게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 에서 살다가 지금은 경기 안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