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란 마음에서의 경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삶에서의 올바른 준비는 넉넉한 죽음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삶도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모두들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죽음은 우리가 더욱 우아한 모습으로 맞아야 할 삶의 일부입니다. 삶에서 우리생활을 옳고 바르게 준비한다는 것은 넉넉하고 여유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매일 매일의 이 세상을 가꾸어 나가는 삶은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몫이지만 모두들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고 괴로움을 느끼는 죽음도 우리가 더욱 우아한 모습으로 맞이해야 하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 모두가 내 인생이며 삶과 죽음이란 ‘나’라는 존재가 이어지는 하나의 연결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일련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인간이 구별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2분화의 모습이 되어 보입니다. 물은 얼음이 되고 수증기가 되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변하는 데 그래도 그 속성은 여전히 하나인 것처럼 삶과 죽음은 현상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지 나의 물질적 존재의 유무(有無)와는 무관합니다.
따라서 삶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고 죽음은 슬프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다만 나의 형태적인 변화에 대한 수용이 요구될 뿐입니다. 죽음을 서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마음을 저리도록 아파해야 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의 삶이 변천하여 가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의미가 생성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관계인 것입니다.
때로는 이 세상의 삶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내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느낄 때 그것은 아직도 “내어주는 것”에 인색한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때”,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 가득해집니다. 내 마음에서 내가 없을 때 그것은 하느님입니다. 사랑의 무(無) 위에서 이뤄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비워진 나의 무(無)안이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질 때 그것에서 옳고 바른 삶의 의미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작은 것에 애착을 가지지 않고 큰 것을 향하여 나를 내어 놓을 때 이뤄지는 아름다움입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삶이란 현 순간을 얼마나 마음을 다해서 살아가는가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이 바로 나의 몫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우아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어놓고 마음으로부터 봉헌할 때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모두를 내어 놓은 나는 행복합니다. 육신적인 고통이 밀려 와도 사랑으로 채워진 나는 행복합니다. 삶도 죽음도 나의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원을 삽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사랑이 나를 존재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사랑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중심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으로 인해서 나는 이 순간이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삶과 죽음, 어떤 모습일지라도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수십 년의 삶보다 비록 고통과 함께이기는 하지만 병중에서의 수십 개월이 더 행복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형제를 사랑하려는 노력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죽음도 삶도 구별없는 아름다움만 존재합니다.
권건오
E-mail : fuoco@catholic.or.kr
말기 폐암으로 머리에도 퍼져서 1개월의 생존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30년을 넘게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 에서 살다가 지금은 경기 안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