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진에서는 지나온 세월의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세월이 지나면 그 역사라는 것은 달빛에 바래서 전설이 된답니다. 발로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즐기던 지난날의 풍광(風光)들은 사라져 버리고 남아 있는 것들도 변해서 이미 제모습은 아닙니다. 당진에 살면서도 채운뜰이 천연기념물인 고니가 찾아오는 철새의 도래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또한 그것이 어릴 적 배우던 초등학교 교과서의 내용이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는 듯 합니다.

그런 지난 날이 있는 당진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가슴 가득하게 풍요하고 안락함을 느끼면서 봄날 따뜻한 햇살의 오후처럼 여유로운 추억으로 마음이 범람을 합니다. 조금만 걸어나가도 바다를 만나고 바다는 나에게 편안한 마음의 향기를 주고는 했습니다. 나서기만 하면 썰물의 해안 갯벌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넉넉하도록 가득 찬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바다냄새는 나의 가슴을 서늘하다고 느낄 만큼 후련하게 했습니다.

버스 한번 타고 읍내 장에 나가면 하루가 걸렸습니다. 동네에도 5일장이 서는데도 그렇게 읍내 장에 가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도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여유롭게 기다리다가 버스에 손님이 많다 싶으면 차비로는 대포 한 잔하고 이웃사촌 동무 삼아서 늦은 밤길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도 행복했습니다.

서울이라도 다녀올라 싶으면 장항선 열차를 타고 신례원 역에서 내려서 머리가 지붕에 닿을 만큼 튀어 오르는 비포장 길을 오면서 버스는 훈훈한 정을 싣습니다. 멀리서 뛰어오는 아주머니도 기다려주면서 큰 짐 이고 숨차하는 할머니도 도와 주면서 섰다 떠났다 하는 시골버스의 여유로움은 요즘에는 하나도 느껴볼 수 없는 그리움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막차를 놓쳐서 걸어서 집까지 왔다면 융통머리가 없어 택시도 못 탄다고 구박을 들을 소리로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해는 물론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비포장이던 38번 국도는 당진에 사는 사람이라면 꽤나 낭만이 있었던 도로 입니다. 물론 하루에 몇 차례 다니지는 않았지만, 비록 그 도로로 먼지를 뿌옇게 날리고 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진이 이어지고 당진의 추억은 그 길거리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몰래 약속하고 나와서 버스를 타면 달리 방법이 없어 한 버스에 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 상관 없는 듯 앞뒤로 따로 따로 가서 딴청을 부리고 동네를 벗어나는 처녀 총각의 옛 로맨스도 있는 길입니다. 당진을 향해 달려오면 곳곳의 산 꼭대기에 우뚝 솟은 소나무는 이정표가 됩니다. 긴 벌을 지나면 이제 합덕을 지났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합덕을 지나 중간께 쯤 오면 쪽지머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주 지나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왜 여기를 쪽지머리라고 부르는 지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합니다. 구부러진 길을 지나서 아름다운 노송 사이도 지나고 옥녀봉을 바라보다가 독암 고개를 올라서면 국사봉이 보입니다. 그러면 얼얼한 궁뎅이를 감싸 안고 버스에서 내리고는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느끼지만 자연부락 이름을 하나씩 뇌어 보노라면 참 아름다운 이름도 많습니다. 개머리, 갯가, 승선이, 도구머리, 빨판, 귀밀 아래구밀, 뒷구지, 음새미. 아랫마을 윗마을, 가사울, 방축골, 샘 건너 큰 동미, 작은 동미.

이런 추억을 간직해 가면서 더 변하지만 않으면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가학리의 학래산방(鶴來山房)에서 35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권건오

E-mail : fuoco@catholic.or.kr

말기 폐암으로 머리에도 퍼져서 1개월의 생존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30년을 넘게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 에서 살다가 지금은 경기 안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