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서히 잊혀지지만 현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구판장’이다. 구판장이란 조합이나 마을 단위에서 생활용품 등을 공동으로 구입해 싸게 파는 곳으로 교통수단이 덜 발달됐던 시절, 각 마을에 한 곳씩은 존재했을 만큼 보편화된 소비장소였다. 그러나 자가용과 같은 교통수단이 널리 보급되고 마트 등 대형매장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구판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또 대부분의 구판장들은 문을 닫거나 명칭을 ‘슈퍼’로 바꾸고 영업을 해오고 있다.
신평면 한정리에서 ‘한정구판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기분(57)씨는 25년째 이 구판장을 운영해오고 있다.
한정리의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한정구판장’이라는 글귀의 간판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이 한씨가 25년간 운영해오고 있는 ‘한정구판장’이다.
여느 간판보다 눈에 띄는 사진 속 간판은 오래전 ‘글씨 잘 쓰는’ 한씨의 친구가 써준 간판이다. 6평 남짓의 구판장 안으로 발을 디뎌놓으면 베어링(?)을 이용해 만든 진열대와 냉장고, 낡은 벽들이 보이고, 방금 전까지 아버지들이 막걸리를 주고받았을 것 같은 탁자가 놓여있다. 전형적인 ‘작은(구멍) 가게’의 모습이다.
“한 때는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참 많았어요. 술 먹는 사람들로 북적거릴 때도 있었죠. 자금순환이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외상장사’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판장을 운영하면서 그럭저럭 용돈은 벌었다는 한씨는 요즘 들어 운영이 정말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당장 25년간 운영해온 구판장의 문을 닫자니 마을 사람들이 아쉬워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급하게 물건이 필요했을 때 가까운 구판장을 찾으면 구태여 멀리 있는 면 소재지까지 나갈 수고를 덜기 때문이다.
구판장 운영만으로는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한씨는 오전과 오후 잠깐씩만 구판장을 열고 나머지 시간에는 밭농사 일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무척 오래된 가게지요. 그래서 때론 사람들이 가격도 비싸고 물건도 오래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물건이 잘 나가지 않는 만큼 필요한 것만 조금씩 사서 그때그때 파니까요.”
이미 많은 부문을 대형마트에 의존하지만 아직도 한정리 사람들은 한정구판장을 찾고 있다. 이곳에 가면 간단한 종류의 생필품과 음료수 빙과가 있다. 살 수 있는 물건의 종류도 마트나 편의점처럼 다양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절 옹기종기 모여 막걸리 한잔 들이키며 정을 나눴던 기억과 냉장고에서 갓 꺼낸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행복해했던 많은 사람들의 어린시절 모습을 이곳 한정구판장에서는 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