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도의원

서해대교가 건설되고 개통을 한 지 5년째 접어들고 있다. 2000년 11월10일 정부차원의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장엄하게 나타난 서해대교의 위용은 세계에서도 몇째 안가는 지역의 상징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지역발전의 가교역할로 이제 서해안 시대를 열어가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지역적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중에서도 명실상부한 당진항의 항만계획이 수립되게 되었고, 임해공단지역 또한 가속화되어 가고 있으며, 관광서비스산업도 그 전망이 밝아 보일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유통구조와 생활권도 수도권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된다.

이러한 기대와 미래의 당진상을 위해서라도 서해대교 건설에 얽힌 사연과 배경이 시사했던 바를 다시금 되새겨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뿐만이 아니라 서해대교건설의 기초를 닦아놓은 것은 당진군민의 의지를 모은 지역지도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뤄진 산물이라는데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진군민이라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보람된 지역문화를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할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5년 전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식 행사시 그 지역의 일은 지역민과 함께하는 지방자치시대를 열어가자고 하면서도 그 누구도 서해대교 건설의 역사에 대해 알고자 했던 사람이 없었던 점을 아쉬워하며 감히 지난 역사와 사실을 당시의 기록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1. 당초 정부계획에는 해상교량(서해대교) 계획이 없었던 것을 당진번영회(당시 회장 최익준)의 국회청원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다.

80년대 중반 서해안 고속화도로의 정부계획자체가 내륙지역인 평택-온양-예산-홍성-호남쪽으로 통과하는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우리 지역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당진번영회 최익준 회장을 중심으로 서해안고속화도로라면 서해안지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경기도 평택 포승면 만호리에서 충남 당진 송악면 한진항으로 연결되는 해상교량 약 2000m를 가설, 평택-당진-서산-홍성지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1986.6.4)하면서부터 고속도로 건설의 노선변경과 해상대교 건설의 당위성이 제기되었다.

2. 국회의원(김현욱 의원) 소개로 대한민국 국회 제131회 정기국회에서 심의 중부권 개발계획에 반영

" 당시 국회에 제출된 당진번영회 청원서를 김현욱 의원의 소개로 제131차 정기국회 제11차 건설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되어 이를 정부측에 촉구함으로써 정부의 중부권 개발계획에 반영하겠다는 회신 접수(1987.10)로 서해대교 건설과 노선변경의 정책 반영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3. 거군적 당진군개발위원회를 조직(회장 안재곤) 서해안 고속도로 당진, 서산 경유 유치운동을 서산지역과 연대 활동

" 시대적으로 서해안 시대의 도래와 함께 고속화도로에서 고속도로 건설로 변경되면서도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계획을 공사비가 적게 들고 추진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해안지역인 당진, 서산지역을 배제한 내륙지역인 평택-온양-예산-홍성으로 연결되는 서해안고속도로 노선을 확정발표함으로써, 당진, 서산, 태안지역의 연대로 서해안 고속도로 유치위원회를 결성, 해상대교(서해대교) 건설, 평택에서 당진, 서산 경유 유치운동 전개(1988-89) 정부안을 지지하는 내륙지역(온양, 예산)과 노선변경을 요구하는 해안지역(서산, 당진)의 극한대립상황이 충남 북부권지역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4. 충청남도의 공청회 결과 대정부건의 당시 3안인 당진, 서산 경유 노선의 합당성 인정으로 정부관계기관에 건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지역간 대결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면서 그동안 당진군이 노력한 당위성이 입증되기도 한 쾌거이기도 했다.

5. 범군민(재경인사 포함) 4만명의 재청원, 김종문 개발위원장 대행 재추진.

" 그동안 범군민의 진정서(1989. 4. 18, 125명)를 정부에 제출하고, 개발위원회 지역대표 75명이 상경해 김현욱 국회의원 안내로 당시 4당 대표를 방문하고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협력을 구했다. 심대평 충남지사의 건의에도 회신이 감감하던 중, 안재곤 개발위원장의 병고로 김중문 위원장의 개발위원회 대행 체제로 재청원서를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부처에 제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또한 지역의 지도자들은 당시 국무총리를 방문하고 협력을 구하는가 하면, 청와대 경제관계수석을 초청해 서해안지역 현장시찰의 기회와 강연회를 통한 군민들의 의지를 집결시켰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해상대교의 당위성을 최초로 당진번영회에서 대정부에 청원함을 시발로 충청남도의 공청회를 통한 노선변경과 서해대교 건설의 합당성이 인정되었으며, 범군민 운동의 결과로 당초의 서해안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되었고 서해대교가 건설됨에 따라 오늘날 지역발전을 앞당겨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부터라도 당진과 함께하는 서해대교 문화가 거듭나기를 제언하며 끝으로 당시 추진활동의 실무진에 있던 한사람으로써 혹시라도 자료부족으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양해를 구함과 아울러 서해대교 건설에 참여하신 정부, 기관단체, 건설회사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임을 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