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옥 석문우체국장
천고마비의 지절이자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풍성함으로 가득한 결실의 계절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인 50~60년대엔 소원이 쌀밥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었다. 쌀은 고사하고 보리밥조차도 배불리 먹을수 없어 여름엔 감자와 옥수수가, 그리고 겨울철엔 고구마와 무가 반식량으로 밥을 짓는데 껍질째 숭숭썰어 넣은 고구마밥과 채썰어 넣은 무밥은 배는 고팠어도 왜 그렇게도 싫었는지 질보단 양을 채우기 위한 어머니들의 가슴아픈 방편이었으리라.
조부와 겸상을 할 때가 있었는데 조부와 어린 막둥이의 밥은 쌀의 비율이 30% 정도였고 그 외는 10% 미만으로 철없던 우리 어린 남매들은 할아버지 진지에 눈길이 가 있었다. 이를 눈치챈 조부께서는 으레 1/3쯤을 남기시곤 했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들은 동시에 서로가 먼저 한 수저 먹으려 쟁탈전이 벌어졌다. 조부께선 며느리들한테 항상 밥을 섞어푸라고 나무라시며 시절을 잘못타고 나서 어린 것들이 불쌍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70년대 중반까지도 꽁보리밥을 못 면했던 것이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이젠 쌀이 남아돌아 쌀값 하락은 물론이요 쌀개방 문제로 농민과 정부가 극한 대치상황에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1994년 모로코에서 열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관세와 통상의 불합리성을 제거하며 물자교류의 촉진과 고용수준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 국제적 협정을 맺은 바 있는데 1993년 현재 116개국이 회원국으로 되어 있으며 한국은 1967년 4월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가트의 협정내용은 회원국간 교섭을 통해 관세율을 인하하고 관세차별을 제거하는 한편 수출입에 있어 수량적 제한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수출입과 대금지불에 관한 절차와 비율에 있어 차별대우하지 않음은 물론 수출보조금 제도를 금지한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가트의 최종 협상이 된 우루과이라운드(UR)로 인해 세계무역기구의 설립과 체계적인 분쟁해결 절차 도입으로 법에 의한 지배를 보다 공고히 하고 서비스, 지적재산권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규칙을 도입한 바 있으며 UR협상에서 설립된 세계무역추진 및 무역분쟁처리를 위한 기구(WTO)가 가트를 대신하는 기구로 1995년 1월에 발족했다. UR협상에서 한국과 일본등의 쌀에 대한 수입개방 특례조치를 일정기간 두도록 하고 특례조치기간이 끝난 경우에는 최소 수입량을 최근 3년간 국내 소비량의 최소 8%를 의무수입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일본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여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여 미질을 높이고 경쟁력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후 쌀 완전개방을 선언했으나 한국은 최근 10년간 67조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붓고도 경쟁력은 고사하고 글로벌시대의 무역분쟁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농업을 국가기반산업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에 실패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초강대국들이 선도하는 강자존의 법칙이 통용되는 국제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 때이며 쌀은 국가 생존의 전략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 쌀 생산의 기반이 무너진다면 고삐매인 망아지처럼 강대국에 귀속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점을 명심하여 쌀생산을 소홀히 한다거나 농업을 포기하는 누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농민들도 기존의 다수확 일변도의 쌀 생산보다는 질을 높이기 위해 볏짚을 썰어넣고 추경을 하여 땅심을 높이고 일본처럼 질소비료를 10a당 4~5㎏ 수준으로 낮추는 한편 급변하는 시대에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적극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농민도 거듭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바로 알 수 있게 농한기에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우리가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과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